
| [인터뷰: 개봉작] 언제든 떠나도 된다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 2026.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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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그라운드 X 영화웹진 '리버스'] 언제든 떠나도 된다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글 차한비 / 사진 이영진 정미는 1년간 돈 없이 사는 ‘0원 살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빈 건물을 점유해 머무는 스쿼팅과 버려진 음식을 구하는 스킵 다이빙을 익히고, 공짜로 얻은 자전거를 타고 자급자족 공동체를 찾아간다. 이후엔 히치하이킹으로 도시를 옮겨 다니다가 히피들과 함께 카라반에 몸을 실어 국경을 넘는다. 이렇게 들으면 용감무쌍한 모험가를 예상할 테지만, 사실 정미는 겁쟁이에 가깝다. 한국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일이 무서워 영국으로 떠났고, 숨만 쉬어도 돈이 드는 세계가 숨 막혀 돈을 거부하기로 했다.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정미는 번번이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향했다. <담요를 입은 사람>은 이 여정을 그저 별난 청춘의 생존기로 정리하지 않는다. 액션캠에 담긴 덜컹거리는 화면과 메아리 없이 울려 퍼지는 혼잣말 속에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르게 살고 싶어 떠나왔는데도 왜 여전히 외롭고 불안한가. 몸과 마음이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집은 과연 어떤 곳인가. 겁이 많은 와중에 호기심까지 넘쳐서 고생을 자처한 정미 덕분에, 영화는 대륙을 넘어 한 사람의 내면으로 가 닿는다. 정미는 두려움 없이 사는 법을 터득하진 못했지만,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몸소 익혔다. 길 위에서 여러 사람의 집을 거치며 집과 길이 대립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정미에 따르면 두려움은 욕망과 연결돼 있다. 삶에 대한 집착이 커지거나 사람을 향한 신뢰가 약해질 때 두려움도 커진다. 정미는 공포를 제거하려고 안달하는 대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요즘은 무엇이 두려운지, 어떤 두려움이 새로 생겼고 전보다 몸집을 키웠는지 알아차린다. 그렇게 살피다 보면 자신과 불화하거나 세상을 등지지 않고, 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된다. 요즘 정미는 연대와 돌봄의 공동체를 상상한다. 돈 없이도 존엄하게 늙고 죽을 방법을 찾고 싶어서다. 겁이 나서 한 걸음 물러섰다가도 궁금해서 이내 두 걸음을 내딛는 사람. 정미는 자신에게 꼭 맞는 보폭으로 다음 여정을 떠날 참이다.
재작년 영화제 상영 당시 인터뷰를 찾아보니 지리산에 살고 있다고 하던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강원도 원주에 있는 부모님 댁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9월 지리산을 떠나 거창의 한 선원으로 옮겼고, 올해 6월까지 그곳에서 지내다가 원주로 왔다. 오늘도 원주에서 출발했는데 서울 오기가 정말 편하다. KTX를 타면 금방이거든. 원주는 내 고향이기도 하다. 여섯 살쯤 이사해서 인연이 깊다 할 순 없지만, 태어난 고장이고 친척들도 여럿 계신다. 부모님도 한동안 원주를 떠나셨다가 이번에 재정착하셨다. 살다 보니 원주만의 매력이 있더라. 시민운동이나 협동조합 운동도 그곳에서 많이 시작됐다고 한다. <담요를 입은 사람> 개봉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면, 살 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 지난 10년간 전남 지역에 살면서 매우 만족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울과의 접근성을 무시하지 못하겠더라.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야 하거든. 전남에서 원주로 왔다가 다시 서울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마 내년 봄까지는 원주에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수술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가족을 근거리에서 돌봐야 한다. 부모님과 함께 이주하는 방향도 고민 중이다. 한집에서 사는 건 싫고, 같은 지역이나 동네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웃음) 그사이 삶의 형태가 또 달라졌네. 부모님과의 동거, 영화 개봉 등 최근엔 루틴에서 꽤 벗어난 일상이겠다. 이전까지 내 루틴이 정말 편안했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 몸을 풀고 명상한 뒤, 개들과 산책을 다녀온다. 아침을 간소하게 먹고 나면, <담요를 입은 사람> 미공개 에피소드를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린다. 거의 매일 영상을 만들었다. 그렇게 작업하고, 밥 먹고, 중간중간 산책하는 게 전부다. 잠들기 전에 한 번 더 명상하고. 단순하고 조용한 생활처럼 들리지만, 마냥 한가하지만은 않은 일상이다. 개봉 앞두고 미공개 에피소드를 다시 꺼내 보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선 많은 부분을 압축해야 했다. ‘언젠가는 풀어야지, 공개해야지’ 하며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개봉 앞두고 촬영본을 다시 돌려봤다. 작품에 넣지 못한 좋은 이야기가 많았고, 당시의 초심도 떠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이미 지겨울 만큼 여러 번 봤던 영상이라고 여겼는데, 무척 신선하고 소중하더라. 매일 보물찾기하는 기분이겠네. 미뤄둔 일을 지금이라도 하게 돼 감사하고, 이를 통해 추진력도 얻었다. 길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라서 유튜브에 올리는데, 그게 또 새로운 관객에게 닿는 창구가 되기도 하더라. 현재는 내 터가 없어서 바깥일도 없다. 원래 같으면 이 시기에 월동 준비하거든. 장작도 구하고. 실은 그것도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말려둬야 하는데, 나는 내 소유의 집에서 살지 않으니 몇 년 치를 쌓아둘 수 없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눈앞에 닥친 한겨울을 대비하느라 가을과 겨울 내내 분주했다. 지금은 부모님 댁에 있으니 육체노동은 잠시 쉬고, 미공개 에피소드 작업과 개봉 관련 일정을 소화하며 지내고 있다.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평소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을 텐데,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 부대끼지는 않나. 혼자 있는 시간과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나. 부모님 집에 살지만, 본채와 별채가 따로 있다. 같이 밥을 먹거나 내가 주기적으로 엄마 아빠에게 필요한 게 없는지 확인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혼자 지낸다.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치악산 둘레길을 자주 걷는다. 내가 굉장히 활발한 사람인데, 그렇게 혼자 있는 것도 무척 잘하고 좋아하더라. 20대까진 몰랐다가 여행하면서 깨달았다. 그때 어떤 내향성이 내게 장착된 것 같다. 일부러 사람을 차단하는 건 아니다.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과도 낯가림 없이 잘 어울린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도치 않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지리산에 살 때는 거의 개들하고만 지냈다. 그런데도 특별히 결핍을 느끼지 않았다. 반대로 요즘 같은 일상도 크게 힘들지는 않다. 이렇게 도시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욕망을 따라가면 되니까. 오히려 집에 돌아가서가 문제다. 본래 리듬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집에서는 명상이나 식단처럼 지켜야 할 루틴을 정해놓는다. 근데 서울에 나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명상도 건너뛰고, 평소에 안 먹던 것도 먹게 된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면 루틴을 되찾을 때까지 시동을 걸어야 하는 거다. 하루 만에는 안 되고 이틀째부터 돌아오더라. 명상하면 바로 티가 난다. 밖에 나와 온갖 자극에 둘러싸여 지내면, 명상할 때 잡생각이 많이 올라온다. 그게 내 점검 기준이다. ‘내가 또 휩쓸렸구나.’ 그런데 뭐 나오면 신이 나니까 나름 즐기다 간다. “와, 도시 오니까 너무 좋네” 하면서. (웃음) 방금 영화 속 정미와 겹쳐 보였다. MBTI로 따지면 ENTP 아닐까 했거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얻고, 판단이 빠르고, 앞날을 미리 계획하기보다는 열어 놓는 타입. 검사하면 ENFP로 나오는데, 지금처럼 주변에선 나를 T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웃음) 여행하면서 P가 된 것 같다. 원래는 J였거든. 영화에 나오듯 당시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게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히피들의 무질서함이었다. 난장판이 된 좁은 트럭을 타고 가는데, 그 안에서도 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내가 앉는 자리와 물건을 두는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배낭에도 어떤 물건을 어디에 놓을지 규칙이 있었고. 그때 알았다. ‘내가 생각보다 질서를 정말 중시하는구나.’ 그게 여행에서 무참히 깨졌다. 일종의 훈련 기간이었던 것 같다. 삶의 방향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옳고 그름을 나누었던 기준도 와해되는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타고난 내 성향은 P에 가까웠던 것 같다. 어릴 적엔 오히려 규칙에 약했고, 시간을 못 지켜서 자주 지각하는 애였거든. 그러다 군대라는 또 다른 세계에 들어가며 많은 것이 변했다. 항상 앞일을 예측하고 대비하도록 요구받았으니까. MBTI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기보다는,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고민하기 위한 테스트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달으면 고통이 생기지 않나. 외향성과 내향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다들 저를 외향형이라고 보지만, 어릴 때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외향성 역시 군대에서 학습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고, 리더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소통해야 했으니까. 군대에 간 뒤 제 에너지가 크게 바뀐 건 맞다. 그때부터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왔고, 다시 여행하면서 내향성을 개발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내가 바깥으로 드러내던 에너지도 여행을 거치며 많이 달라졌다. 유년 시절엔 남자가 되고 싶었고,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성적 에너지를 억누르며 살아온 면이 있는데, 여행하면서 그 부분이 깨어났다. 태어나 처음으로 치마를 입고 머리도 길러봤다. 여행을 하면서 뒤집힌 것이 많다.
박정미 ⓒ이영진 지금은 삭발 상태인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선원에서 지냈다니 출가를 고민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지난해 여름이 너무 더웠다. 머리카락이 불필요하게 느껴져서 밀었고, 어쩌다 보니 그 후에 선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머리를 민 분들이 대다수니 내 삭발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더라. 차차 익숙해졌고 관리도 편해서 계속 유지하고 있다. 선원에 계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너무 고통스러울 때 출가하거나 머리를 미는 것은 모두 지혜가 있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고.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고통이 나쁜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지만, 머리를 미는 행위에는 그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나고 무언가를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머리카락을 ‘무명초’라고도 하는데, 그것을 벗어내고 싶다는 충동은 지혜가 있는 충동이라고 하셨다. 용기가 나지 않아 삭발을 못하고 있다가 지난해 여름에는 싹 밀어버렸다. 엄청난 희열을 느꼈고, 지금도 아주 만족한다. 별일이 없다면 계속 이대로 살지 않을까 싶다. 겨울에는 정수리가 시리긴 하지만. (웃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는 뭐라고 하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하는지도 궁금하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작업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삶의 방식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관계 속에서 더는 살지 않는 것 같다. 사는 지역을 밝히는 정도다. 무엇을 하며 사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직업이 무엇인지를 묻는 대화 자체가 거의 없다. 그러니 나를 표현해야 할 일도 없다. 가끔 질문으로 침범해오는 어른들을 만나면 그냥 백수나 한량이라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진도에서 살 당시, 내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해 고민했다. 불편해하는 상대들도 왕왕 있었거든. 어떤 당연함을 거부하는 결정은 곧 저항성을 지니기 때문인 듯하다. 예컨대 돈을 쓰지 않는다거나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종종 돈을 쓰고 육식하는 사람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한 것처럼 오해받지 않나. 내가 뭔가를 지키려 할 때, 상대는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방어하려 한다. 그러면 나는 그를 공격하는 존재가 된다. 실제로 대화가 논쟁처럼 번진 적도 있다. 나는 그저 돈 없이 산다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격하게 반응할까 의아했다.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 나서는 내 삶의 방식을 굳이 말하지 않게 됐다. 실제로 마을 어르신들은 나를 굉장히 한심하게 바라봤다. 젊은 애가 시골에서 허송세월한다며 안타까워하셨지. 심지어 어떤 할머니는 “젊음이 너무 아깝잖아”라며 나를 붙잡고 우셨다. 정말 충격받았다. 물론 쓸데없어 보이는 일만 하며 산 것도 사실이다. 돌담 쌓고, 개랑 산책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그랬을 것이다.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그냥 두는 법을 배웠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설명한다고 해서 백 프로 이해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르신들은 채식도 이상하게 여기신다. 돼지고기를 주시면 알레르기 있다고 둘러댔다. 그러면 생선을 주셨다. 생선도 못 먹는다고 하면 다른 해산물을 챙겨 주시고. (웃음) 둘러대는 데도 한계가 있긴 했지만, 이해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편이 서로에게 나았다. 서로 다른 삶이 만나며 생기는 마찰과 불편함이 또 다른 확장을 이끌기도 하지 않나. 시골에서 홀로 지내보니 그 간극이 보통 큰 게 아니구나 싶었다. 때론 말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성폭력적인 발언도 난무했다. 일일이 따질 수 없을 만큼 압도적 다수에 둘러싸이고 나니 점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처음엔 마을에 살다가 결국 산으로 갔다. 사람들과 떨어져 정말 편안하게 지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자유를 찾아 자연 속에서 혼자 사는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선원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그것이 자유라기보다 자만에 가까웠다는 걸 알았다. ‘나는 저들과 달라. 차라리 혼자 있을래.’ 하며 나만의 성을 쌓은 셈이다. 옷을 다 벗고 다녀도 될 만큼 외딴집에서 지냈다. 지역 내 다른 청년들과 교류했으니 완전히 은둔한 것은 아니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또한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일이구나 싶더라. 나와 맞지 않거나 나를 이해하지 못할 듯한 이들과는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거다. 그 깨달음이 선원에 들어가는 데 자연스레 영향을 줬고. 다만, 생각하기엔 선원도 군대만큼 규율이 엄격한 공동체 같은데.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는 통제적인 공간이 맞다. 위계질서가 군대만큼 명확하고, 스님들을 공경해야 하니 겉으로는 절대복종처럼 보이는 문화도 있다. 어쨌든 나는 통제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데도 내 발로 그곳에 들어갔다. 정말 훌륭한 스님들을 만났고,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 혼자 지낸 시간과 그간의 선택을 돌아보며 내가 자만 덩어리로 살았다는 걸 알았다. 도망치는 삶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도망치고 있던 거다. 선원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했다. 그전까지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한 하고 산다’라는 태도였는데, 선원살이 하며 마음을 열었다. 누구와 함께 있든 어떤 일을 하든, 내 안에서 그것을 싫다고 밀어내지 않아야 편안하구나.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짜 자유로운 거구나. 조금씩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자유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도망이었는데, 그건 결국 ‘내가 가장 옳다’는 자만에서 기인한 결과였다. 선원에서 그 마음이 엄청나게 깨졌다. 무릎을 꿇었다고 할 수 있지. 어떤 배움이었을까. 삶의 본질적 변화를 추구해 온 역사가 있으니 새로운 깨달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훌륭한 공동체였다. 수행 방식도 그렇지만 스님들 생활 자체가 소박하고 단정했다. 0원살이를 했던 나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씀씀이가 검소하고, 자급자족을 실천하신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승가가 있구나 싶어 놀랐다. 그곳 스님들은 몸과 마음을 다 내어놓고 사는 분들이다. 무척 고귀하고 수승한 삶으로 다가왔고,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묻게 됐다. 실은 작년에 출가를 고민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생각하니, 미처 내려놓지 못한 욕망이 선명히 보였다. 부모님도 마음에 걸렸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사소한 자유도 발목을 잡았다. 마침 개봉도 앞두고 있어서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일 년 뒤에 출가하겠다고 했다가,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스님께 “저는 그냥 세상에서 수행하며 살겠습니다” 말씀드렸다. 그 뒤로 오히려 더 행복하게 수행한다. 이렇게 영화도 개봉하고. (웃음) 계속 점검하면서 가야지. 점검은 어떻게 하나. 영화를 공개하고 나면 사람들 앞에 설 일도 늘어나고, 자연스레 말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얘기한 욕망과 자만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자각하고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 세속에 휩쓸리면 욕망이 자라고 ‘내가 옳다, 나는 대단하다’라는 마음이 커진다. 불교에서는 그런 데서 번뇌가 생긴다고 한다. 선원 생활하며 내 생각과 마음을 정직하게 알아차릴 기회를 얻었다. 내 속을 진실하게 들여다보게 됐지. 하지만 밖에 나오면 나를 점검해주는 지표가 적어져서 쉽게 휩쓸린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지금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법문 듣는 것이다. 선원에 있을 때보다 많이 듣는 것 같고, 여전히 그곳에서 스님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원에서 배운 것들이 나를 붙잡아주고 있다. 개봉 전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구나 싶다. 말한 대로 이 영화는 주인공도 감독도 나다. 조금만 방심하면 내가 잘난 사람인 것처럼,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사람은 본래 칭찬을 원하고 비판은 원치 않으니 그런 마음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금은 개봉을 앞두고도 크게 들뜨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다.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안 그래도 관객을 만나는 일이 감독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담요를 입은 사람>을 처음 상영한 지도 2년이 지났고, 그새 감독의 삶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 영화 속 0원살이 프로젝트는 2014년 10월에 시작해 약 2년간 진행했다. 벌써 12년 전 일이 됐다는 의미다. 감독에게 이 영화는 거의 전생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더라. 의외로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우려먹었으니까. (웃음) 『0원으로 사는 삶: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들녁, 2022)을 쓰고 북토크와 강연을 다니면서 계속 이야기했고, 요즘은 미공개 에피소드까지 들여다보고 있어서 오히려 더 생생해졌다. 가끔 페이스북에서 친구들 얼굴 보면 깜짝 놀란다. 기억 속에는 10년 전 얼굴로 남아 있는데, 다들 나이가 들었더라. (웃음) 문득 그 시간 속에 여전히 사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정체됐다는 뜻은 아니다. 초심이 원체 강력했다.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그만큼의 결단력을 살면서 몇 번이나 낼 수 있겠나. 나는 그 일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배고프면 초코바를 사 먹을 수도, 너무 지치면 버스를 한 번 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결심을 지켰다. 어느 순간부터는 ‘돈’의 개념 자체를 잊었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 참은 것이 아니고, 그냥 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거다. 어쨌거나 그만한 결단력은 단순히 내 의지만으로 유지된 것은 아니다. 시작점엔 분노라는 감정이 크게 작용했지만, 결국 기존과 다른 삶이 가능함을 증명해보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분노가 들끓지도 않고, 극단의 결심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다. 만약 0원살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곧장 책과 영화를 내놓았다면, 이제까지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종료를 기점으로 책은 6년 만에, 영화는 꼬박 10년 만에 완성했다. 한 주제로 긴 시간 창작을 이어가다 보면 부담이 쌓일 법도 한데, 더 빠르게 털어내고 싶진 않았나. 그때 일어난 일을 책으로 쓰고, 영화로 만들고, 영화에 포함되지 못한 영상을 편집하며 계속 처음을 곱씹게 된다. 나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무척 이롭다. 지금은 생활이 훨씬 편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편리함에 자꾸 물들어간다. 그때마다 창작 활동은 ‘이런 마음이었지. 이렇게 살아보려고 했지.’ 하며 나를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작은 만남에 초대받는 느낌이다. 당시 연을 맺은 스승들이 현재의 나를 찾아와서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나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영화를 완성했을까. 왜 개봉까지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걸까. 나는 욕망이 많고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더했다. 모든 일이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됐다면, 영화의 메시지를 진정성 있게 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경험까지 한 사람이야’라며 오만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다. 다행히 지난 10년간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여행으로 세상을 한번 크게 경험한 뒤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상을 나누며 조용히 살았다. 그 시간이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여행 직후에 영화를 내놓았다면 세상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걸? 자만에 차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면 안 된다” 이야기했을 텐데, 누가 듣고 싶어 하겠나.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실제로 그런 시간도 있었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오만이 극에 달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어리석어 보였다. 도시는 없어져야 하고, 고기를 먹는 인간은 잘못됐고, 돈을 좇는 사람들은 모두 탐욕스럽다고 생각했지. (웃음) 내 말이 자꾸 논쟁으로 번진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엔 난 의도 없이 말했는데,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돌아보면 내 안에 자리한 자만이 말에 묻어나서 ‘당신은 잘못 살고 있어’라는 식으로 들렸던 것 아닐까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불편할 수밖에.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보인다. 책도 지금 보면 낯뜨겁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분량도 상당하고 문장마다 고심해서 쓴 흔적이 엿보이던데. 내가 뭐라고 여기서 이런 말을 했나 싶다. 책을 쓰는 데 6년이 걸렸고, 중간중간 꽤 고쳤다. 그런데도 다시 읽으면 걸리는 부분이 튀어나온다. 사실 영화도 개봉 전에 약간 수정할까 고민했다. 영화를 완성한 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쉬운 점이 보이더라. 그렇다고 2년 사이에 내가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 안의 자만을 바라보는 능력이 조금 생겼다. 이제 화가 나거나 탐욕이 올라오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고, 어떤 자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보인다. 보통은 개봉이 지연될수록 관객과 멀어질까 봐 걱정하는데, 감독의 경우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여행 끝나자마자 뚝딱 만들어서 개봉했다면 엄청나게 욕먹었을 거다. 내가 세상을 비난했으니 나 역시 세상에 비난받았을 테고, 정작 전하려던 이야기는 시작도 못한 채 싸우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이젠 조심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묵묵히 살아온 지난 시간과 개봉 직전의 선원 생활을 통해, 그렇듯 자만에서 빠져나오는 태도를 배운 것 같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화 말미에 친구들과 책을 무작위로 펼쳐 문장을 읽는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감독이 고른 페이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말하지 말고 행동하라. 당신이 배운 바를 널리 퍼뜨려라.”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무슨 메신저라도 된 것처럼 여겼다. ‘내게는 사명이 있어.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나눠야 해.’ 마치 진리에 통달했다며 세상에 깨달음을 전파하려는 사람처럼 굴었겠지. 실제로 그랬다. 지금은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안다. 내가 쓴 책의 문장마다 그 어리석음과 욕망이 보인다. 그때는 내려놓음에 관해 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읽으면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더 많이 보인다. “배운 바를 널리 퍼뜨려라”라는 문장도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뭔가를 깨달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거다. 내가 끼어들지 않은 채 말이다. 그건 내 앎이 아닌 그 사람들의 지혜, 그들이 실제로 살아온 삶이니까. 하지만 영화나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감독을 일종의 구루처럼 바라보는 시선을 종종 마주할 듯하다. 삶의 이유나 방식을 묻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하나. 그게 참 위험하다. 특히 책에서는 나라는 사람이 시청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고 느꼈다. 영화에는 내 목소리와 말투,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쾌하면서도 불만 많고,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너는 왜 살아?”라고 묻기도 한다. 근데 영상과 달리 글은 정제돼 있다 보니, 내가 얼마나 허술하고 반항심 많은 사람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모양이다. 책을 읽고 내게 환상을 품는 사람을 몇몇 만났는데 무섭더라. 마음의 괴로움이나 삶의 문제에 관해 답을 구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나친 기대를 표현하거나 나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이들을 보면 그때부터 뒷걸음질 치게 됐다. 그래서 영화가 어서 공개되기를 바란 면도 있다. 영화엔 활기차면서도 불안정한 내 모습이 담겨 있으니까. 본래 욕하는 모습도 많았는데 친구가 그건 빼라고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좀 남겨둘 걸 그랬네 싶다. (읏음) 내레이션 사이에 툭툭 들어가는 농담이 인상적이었다. 기본적으로 혼자 있어도 말이 많고. (웃음) 카메라를 의식했던 건지, 아니면 “힘들어” “무서워” 하며 감정을 소리 내어 토해내야 했던 건지 궁금했다. 평소에 혼잣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카메라를 달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 지금이야 브이로그라는 형식이 일반적이지만, 12년 전에는 아니었다. 요새는 어딜 가든 카메라를 향해 혼잣말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 당시에는 그런 포맷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기록하다 보니 상황을 설명하거나 내게 말을 걸듯 자연스럽게 독백했다. 너무 외로워서 카메라를 어떤 대상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를 누군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하길 잘했다. 편집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됐거든. 독백으로 상황이 충분히 설명되니 내레이션을 줄일 수 있었다. 초반에는 깔깔대면서 보다가 어느 순간엔 메아리 없는 그 혼잣말이 서글프게 느껴지더라. 저기에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확 다가오고. 미공개 에피소드 중에 내가 개한테 “나 지금 기뻐. 근데 사람이랑 기뻐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여행하며 많은 친구를 만났지만, 결국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다.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경험과 감정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다니다 보니 그런 갈증이 늘 있었다. 어느 시점에는 카메라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였지. 히치하이킹 하려고 길에 서 있을 때도 혼자 중얼거렸다.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그때 사용한 고프로 카메라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나. 갖고 있다. 너무 오래된 버전이라 지금은 쓸 일이 없지만. 목걸이 형태로 가슴 앞에 고프로를 매달고 찍는 방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하루 이틀 촬영한 것도 아니니, 흔들림을 줄이거나 구도에 변화를 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듯한데. 걱정은 했다. 이것만으로 어떻게 화면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광각 렌즈라 사람은 조그맣게 나오고, 주변은 쓸데없이 넓고 왜곡돼 보였다. 뷰파인더도 없어서 뭐가 찍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화면이 삐딱하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작 프레임 밖으로 나간 경우도 많았다. 나라고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없던 건 아니다. 다만, 당시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만도 벅차서 더 욕심을 낼 수는 없었다. ‘촬영까지 신경 쓰는 순간 나는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고됐다. 영국 농장에 머물던 무렵에는 그나마 편안했다. 어디로 갈지 미리 계획했고, 자전거를 탔고, 한 장소에 몇 주씩 머물렀다.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면서부터 촬영 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매일이 생존이었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 벌어졌기 때문에 카메라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사실 고프로를 매달고 다니는 것만 해도 번잡했다. 터키에서는 카메라를 폭탄으로 오해해 검사를 받기도 했다.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는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었고, 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과 장비를 메고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촬영도 촬영인데,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음향이었다. 별도 마이크 없이 찍어서 불안했지만, 일일이 신경 쓸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영화를 찍기 위한 촬영은 아니었다고 이해하면 되나. 촬영은 늘 후순위였다. 내 생존과 삶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일이 먼저였다. 당시 나는 삶에 근원적인 갈증을 느꼈고, 그 답을 찾는 것이 여정의 핵심이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여행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삶을 둘러싼 질문을 따라갔고, 촬영은 그 경험을 증거로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영화를 이유로 내 삶을 바꾸지 않았다. 혼자 촬영하다 보니 놓친 장면이 정말 많다. ‘방금 그걸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바로 지우려 했다. 그 장면이 없어도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지나갔다. 현재를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모든 두려움은 현재에서 벗어날 때 생기니까. 잘 찍고 싶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결국 욕망이지 않나. 거기에 몰두하는 순간,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삶과는 멀어진다. ‘영화는 부수적으로 담을 뿐이다. 지금 경험하는 현재에 집중하자. 그렇게 살다 보면 영화도 알아서 만들어지고, 모든 일은 알맞게 흘러갈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매 순간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선한 마음을 품는 것뿐이었다. 이는 불교의 가르침과 비슷한 면이 있다. 불교에서는 선업을 쌓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나.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만든 원인은 언젠가 그에 맞는 결과로 돌아온다. 그러니 불순한 것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끌어당김이나 카르마 개념과도 어느 정도 닿아 있는데, 여행하면서 자연스레 그런 태도를 훈련했다. 물론 욕심이 치달을 때도 있었다. 영화에 나오듯 히치하이킹하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됐는데, 두려움이 밀어닥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카메라 생각이 나더라. 생각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기록해야겠다는 마음 아니었을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느낀, 너무 무서운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 ‘이걸 찍을까? 카메라를 들면 죽겠지? 그러면 녹음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올라왔다. 종군기자의 사명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분명히 욕망이었다. ‘장면’이 될 것 같다는 이상한 기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 삶에 대처하기보다 작업을 생각하는 자신과 마주하니 무엇이 진짜 내 마음인지 헷갈리고 무서웠다. 이후에도 비슷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나를 타이르며 훈련했다. ‘촬영을 우선해서는 안 돼. 너는 삶을 살아야 해.’ 결과적으로는 화면의 흔들림, 고르지 못한 음향 등 기술적 한계가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형식이 됐다. 가슴에 고프로만 매달고 촬영한 것도 어떤 콘셉트가 아니었다. 다른 카메라를 추가하기 번거롭고, 렌즈를 돌려 내 얼굴까지 찍을 여력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관객들이 ‘1인칭 시점의 촬영’으로 해석해 주더라. 삐딱한 구도와 덜컹거리는 화면도 분명 큰 단점인데, 리얼리티를 배가하는 요소로 포장해주시고. (웃음) 결국 해석하기 나름 아닐까. 예술에 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진심을 정성껏 담으면 보는 이에게 전해진다고 본다. 심지어 어떤 장면은 음성으로만 남아도 된다. 영화 속 넵튠과의 대화는 당시 촬영하지 못하고 녹음만 했는데, 처음에는 그걸 영화에 쓸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지 못했다. 근데 편집하다 보니 넵튠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울림이 굉장해서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더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었다. 내 삶을 제대로 살면, 그 진심이 어떻게든 영화에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박정미 ⓒ이영진 엔딩에서 검은 화면 위로 음성만 흐르는 부모님과의 상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촬영하지 못해서라기보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로 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크게 다가오더라. “그지 새끼”가 되어 나타났다는 핀잔에도 꽉 찬 사랑이 묻어났다. 어차피 내 카메라는 표정을 잘 담지 못했다. 광각 렌즈라 생생한 표정 변화를 제대로 포착한 장면이 거의 없다. 대사를 더빙해도 모를 정도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편집하기는 편했다. (웃음) 구체적 표정이나 당시 상황을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감정이 전달됐다는 게 나도 신기하다. 내가 느꼈던 감동과 애정, 두 분의 다정함이 과연 전해지려나 싶었거든. 영화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감독은 두려워서 도망쳤다고 하지만, 그 도망은 오히려 더 큰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 되곤 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두려움이 곧 동력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택한 것은 정면 승부에 가까운 도망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시스템에서 살아가기가 너무 두려울 때 그 안에서 숨을 곳을 찾는 방법도 있지 않나. 두렵지만 경계를 넘지는 않은 채 계속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한편, 나는 시스템 자체를 뚫고 밖으로 나간 경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삶에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동력을 얻는 순간들이 있었다. 군대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다. 군 생활을 버티지 못할 걸 알면서도 갔다. 시도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듯했다. ‘어차피 너는 군에서 나오게 될 거야. 통제된 생활을 못 버틸 테고, 반항심도 많잖아. 그래도 직접 해봐야 정확히 알겠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자.’ 두렵지만 정면으로 부딪혀보는 거다. 그렇게 군에서 3년을 보냈다. 거기서 나오는 것도 두려웠다.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 순간에 다다를 때마다 속으로 저울을 들고 무게를 재본다. 지금 이곳에서 감당하는 괴로움과 밖으로 나가서 맞닥뜨릴 두려움 중 무엇이 더 무거운가. 한국을 떠나서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그곳에서 회사를 관두고 0원살이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서 해고당하다시피 나왔지만, 결국 퇴사를 선택한 것은 나였다. 조직에 있는 시간이 지옥 같았다. 생계에 대한 두려움이 거셌지만, 일단 그곳이 나를 죽이고 있으니 떠난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세계와 싸워야 했다. 물론 여행 중에도 늘 두려웠다. 장소를 옮기는 것조차 부담스럽더라. 한곳에 겨우 익숙해지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모든 순간이 두려웠다. 백 번이면 백 번 다 가기 싫었다. 익숙하고 편한 상태에 머물고 싶은 마음과 매일 싸웠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두려워하고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그 경계를 뚫고 나가지 못한다. 바깥에 더 큰 두려움이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지금의 삶을 받아들이지도, 그곳에서 뛰쳐나오지도 못한 채 살다 보면 상처 입게 된다. 불안과 우울, 세상을 향한 분노가 쌓이거든. 감독에겐 그때마다 ‘더는 여기 있으면 안 돼!’ 하고 알람이 울리는 건가. 어릴 적부터 본인 상태와 욕구를 기민하게 파악했던 것 같다. 어떤 환경이 내 정신을 좀먹는지 비교적 빨리 알아차리는 편이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뛰쳐나갔던 건데, 지나고 보니 두려움을 원동력 삼아 벽을 돌파한 사람이 된 거다. 삶은 어디에 있든 두렵다. 결국 어느 쪽이 덜 두려운지를 선택하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는 게 더 두려운 사람은 안에 남는다. 나는 본능적으로 ‘여기 있으면 안 돼’ 하며 위험을 감지했다. 어릴 적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결혼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부모님이 결혼 얘기를 꺼내면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내가 왜 결혼하지 않기로 했는지 알아? 엄마 아빠를 보고 자라서 그래. 엄마가 고생하는 걸 보면서 이해가 안 됐어. 여자라는 이유로 저렇게 희생하며 살아야 하나? 사랑했던 두 사람이 얼마나 배려 없는 관계로 변하는지도 지켜봤고. 나한테 결혼하라고 하지 마.” 그러면 부모님은 말씀이 없어지신다. (웃음) 글쎄, 내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내 선택을 새로운 도전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도전이라기보다 현재 삶에 불만족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현재가 완벽하다면 이곳을 떠나서 새로 시작할 이유가 없지. 달리 말하면 나는 불만족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했던 것 같다. ‘여기서는 못 살아’라는 신호를 남들보다 크게 받아들였고, 행동으로 옮겼다.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영화에서도 특유의 기동성이 빛을 발한다. 돈 한 푼 없이 먼 길을 떠나는 여정이 마냥 즉흥적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주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처럼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삶의 터를 마음먹은 대로 옮길 수 있다는 건 소유와 소비가 적은 삶과도 얼마간 연관이 있겠다. 지금도 살던 곳을 떠나 어딘가로 훌쩍 옮겨가는 일이 자연스럽다. 다들 신기하게 보는데, 내겐 별로 부담이 없다. 크게 가진 것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줄 거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면?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이 있다면? 가정을 꾸렸다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가진 것이 많을수록 버리고 떠나기 어려울 것이다. 덜 가졌을 때보다 많이 내려놓으니 타격이 클 수밖에. 반면에 나는 대단한 뭔가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인지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사는 집을 두고 떠나도 된다. 친구나 가족과 잠시 멀어지겠지만, 인연이 영영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돌아갈 집이 더 많아진다. 지금도 진도와 구례에 가면 한두 달 머물 수 있는 집이 있고, 거창의 선원에도 언제든 갈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계속 흘러간다.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하거나 정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떠나거나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일이 이제 덜 두렵다. 여전히 두려움은 삶의 화두인가 보다. 평생의 화두다.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믿는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를 벗어나고 욕망에서 자유로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상태. 즉 깨달은 자, 부처가 되는 것이다. 아마 몇 생을 거치더라도 나는 계속 두려움을 느낄 듯하다. 지금은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애쓰기보다, 두려움이 내게 어떤 질문을 가져오는지 바라보려 한다. 생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0원살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나. 그다음 찾아온 두려움은 죽음이다. 돈 없이 사는 일을 해봤다면, 이제는 돈이 없는 상태에서도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구하는 과정이 다음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죽음과 노화, 질병이 두려워서 보험과 연금에 의지한다. 간병을 준비하며 돈을 모은다. 하지만 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시스템 아래 숨는 일일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죽을 방법을 찾으려면, 돈이 아닌 다른 길을 탐색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서 돈 없이 어떻게 늙고 죽어갈까.’ 그 질문을 품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씩 보인다.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이유와 방향이 잡힌다. 그러니까 두려움 덕분에 설렘을 느끼는 거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테니 말이다. 돈을 제외한 채 두려움과 마주할 때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 찾게 된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돈으로만 해결하려 하니 악순환이 이어지고 두려움은 더 커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음은 결국 혼자 맞아야 한다. 좋은 요양시설에 들어간다고 해서 두려움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죽음을 마주할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을 수 있다. 두려움을 돈으로 해결하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어느 때는 삶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 같아도 결국 돈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다만,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감독을 향한 걱정 혹은 비난에는 어떻게 대응하나. 돈 없이 살아본 덕분에 나는 두려움을 날것으로 바라보게 됐고, 그것을 내 삶에서 풀어가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됐다. 그 점이 감사하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질문을 지켜보며 삶의 방향을 그려가면 되겠구나. 할 일이 참 많네’ 싶다. 신기하게도 남이 하는 말에는 별로 타격을 받지 않는다. 시골 할머니들이 한심하게 봐도 웃고 말았다. 귀촌을 고민하는 친구들과 대화해보면 대부분 생계를 걱정한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지역으로 이주하기가 내키지 않는 것이다. “직업과 타이틀에 대한 욕망,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시골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주말에 카페나 빵집,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수도 있고, 농사를 도우며 소소하게 생계를 이어갈 수도 있어. 소비가 적으니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네게 정말 중요한 일을 하면 돼. 어떤 면에선 도시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어.” 아무리 이야기해도 친구들은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타이틀이 사라진 나, 다른 사람에게 무시받는 나를 견디기 어려운 거다. 자신의 존재를 직업으로 포장해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으로 확인하려는 마음도 크다. 생계를 위해 소소한 일을 하는 것 자체에서 자괴감을 느낀다. 친구나 주변 사람, 특히 부모님이 한심하게 볼까 봐 걱정하고. 자랑할 수 없는 자식이 되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이니까. 내 얘기네. 거의 12년간 자랑할 수 없는, 어디에 내놓아도 창피한 자식으로 살았다. (웃음) 엄마 아빠가 무수히 많은 상처를 줬다. “나는 자식복이 없다” “자식을 잘못 키웠다” “인생 헛살았다” 등등 다른 집 애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온갖 말로 타박했다. 근데 나도 말싸움하면 안 질 자신 있거든. 예전에 여행할 때 엄마는 “정미야, 다른 건 안 바랄 테니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라”라고 했다. 폭탄 테러가 빈번한 시기였으니 얼마나 걱정하셨겠나. 그때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지금 한 말 꼭 기억해.”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 마음이 곧 바뀔 거라는 걸 알았거든. (웃음) 엄마가 나를 탓하기 시작하면, 왜 엄마에겐 지금이 충분하지 않냐고 되묻는다. 내가 죽지도 아프지도 않고, 심지어 이렇게 즐겁게 사는데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나는 다른 부모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건강하게 내 옆에 있고, 우리가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계속 그렇게 말하다 보니 엄마도 세뇌되고, 아빠도 서서히 나를 포기하게 됐다. (웃음) 뭐 여전히 자랑스러운 자식은 아니다. 책이 나오고 영화가 개봉해도 엄마에게 난 가난한 작가이자, 이름 없는 감독일 뿐이다. 엄마의 기준은 “그래서 세상이 너를 알아? 돈을 많이 벌어?”거든. 돈도 없고 남편도 없으니 나는 아직도 한심하고 걱정스러운 딸이다.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은 진작 알았고, 별로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행복이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만족과 불만족을 나누는 단단한 기준을 갖고 산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자신을 꾸미고 대단한 타이틀을 얻은 이라 해도,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불행이 보이면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 삶을 부러워하거나 그와 비교해 나를 초라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재산이나 평판이 중요하지 않다면, 감독은 어떤 삶을 부러워하나. 지금 여기에 평온하고 만족스럽게 존재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동경한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고통과 괴로움, 번뇌가 없는 삶이니까. 겉보기에 좋은 것은 부럽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갖게 되면 민망하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소유하니 불편해진다. 그러니 다른 이가 가진 것도 부럽지 않다. 다행이구나 싶다. 내 기준은 소위 말하는 세상의 기준과는 정반대이기에, 내가 타인의 평가에도 그리 상처받지 않는 것 같다.
<담요를 입은 사람> 스틸 감독이 겪어온 시간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경험이 ‘환경 보호’, ‘소비주의 반대’, ‘자급자족의 삶’처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로 빠르게 요약되거나, 멋진 무용담처럼 소비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의도와 다르게 감독 본인과 작품이 규정되는 것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일단 이 영화 자체가 너무 많은 것을 다룬다. 환경 영화라고만 할 수도 없고, 시스템에 관한 영화나 여행 영화라고만 부를 수도 없다. 청춘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도 충분치 않다. 그런 요소가 있긴 하지만, 어느 하나로 딱 규정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예상하고 봐도 반전이 있는 영화다. 앞부분만 보고 나가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영국에서의 삶과 이후 이란으로 향하는 여정은 완전히 다르다. 끝까지 봐야 전체를 알 수 있다. 결국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없다. 근데 우리는 영화뿐 아니라 삶과 존재를 대할 때도 각자 프레임으로 판단하고 해석하지 않나. 내가 A라고 말해도 누군가는 B로 볼 것이고, 반대로 내가 B라고 거듭 설명해도 누군가는 A가 틀림없다고 할 거다. 다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볼 텐데, 그게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든 괜찮다. 우리는 어차피 무수한 평가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이렇게 길을 걷기만 해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해한다. 스님인지 아닌지를 자기 프레임으로 판단한다.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가면 다들 내가 환자인 줄 안다. (웃음) 절에 가면 모두 나를 스님으로 부르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놀란다. 그런 시선이 영화에도 묻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감상평을 찾아보니 “이렇게 살고 싶다”부터 “이렇게는 못 살겠다”까지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더라. 그런데 어느 쪽이든 자기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영화에 관한 코멘트가 곧 그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셈이다. 나도 여행 내내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여기서 평생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곳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힘들었고, 당시에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때 만난 이들이 내 안에 씨앗으로 심어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조건이 맞을 때마다 하나씩 자라났고, 언젠가부터 내 삶에서 여러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다. 관객도 영화를 보면서 각자 다른 씨앗을 챙겨가지 않을까. 비난도 각오하고 있다.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사람들의 아픈 데를 찌른다. 돈 없이 사는 문제를 비롯해 불편한 이야기가 여럿 나오니까. 나 역시 싸우고 다치면서, 묻고 또 물으면서 그 여행을 마쳤다. 그러니 괜찮다. 그저 한번 만나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당장은 눈앞에서 치우고 싶어도, 영화를 보고 나면 어딘가에 씨앗이 심길 수도 있으니까.
박정미 ⓒ이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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