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뷰: 개봉작] 친구라면 걱정 말고 <이반리 장만옥> 이유진·성재윤 | 2026.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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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그라운드 X 영화웹진 '리버스'] 친구라면 걱정 말고 <이반리 장만옥> 이유진·성재윤 글 차한비 / 사진 이영진 서울에서 레즈비언 바를 운영하던 만옥(양말복)은 어느 날 가게도 접고, 이십 년을 만난 금자(김정영)에게 말도 없이 고향 이반리로 내려간다. 남 못지않게 애쓰고 베풀며 살았지만, 수중에 남은 건 별로 없다. 세상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숨이 차는데, 선배 귀한 줄 모르는 요즘 애들은 저들끼리 시시덕댄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 피해 떠나왔지만, 고향이라고 해서 아늑한 것은 아니다. 다치고 지친 채로 서 있는 만옥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 만옥만 보면 “아줌마!” 하며 달려오는 애가 있다. FTM 트랜스젠더이자 춤추기를 좋아하는 열일곱 재연(성재윤)은 만옥이 반갑다. 이반리까지 무지개 깃발을 들고 온 것도 대단하다 싶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영화는 그렇게 고향, 가족, 성소수자 커뮤니티, 세대 갈등, 거기에 로맨스와 정치까지 온갖 요소를 끌어안으며 바쁘게 달린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절망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상처받더라도 멈추지 않고, 때로는 태평함과 낙관을 무기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이유진 감독은 처음부터 “넘치는 해피엔딩“을 구상했다. 개연성 없이도 매일 비극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한 번쯤 크고 환하게 웃는 희극을 선보이고 싶었다. 사진 작업으로 정체성을 탐구하던 성재윤 작가는 <이반리 장만옥>의 “뻔한 행복“에 끌려 연기에 도전했다. 불행에 지지 않고 행복을 상상하기. 그 목표에 동의한 여러 동료가 걱정 대신 응원을 보탰다. 영화가 기운차게 달려 나간 곳, 더 밝고 더 웃긴 쪽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이반리 세계관’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기획 배경부터 듣고 싶다. 서울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와 명우형을 다룬 <홈그라운드>(권아람, 2023), ‘바지씨’의 역사를 소환한 <불온한 당신>(이영, 2017), 드랙 아티스트 모어의 삶을 좇은 <모어>(이일하, 2021), 노년에 접어든 레즈비언 부부의 일상을 기록한 <두 사람>(반박지은, 2025), 자기 동네를 바꾸겠다며 선거에 뛰어든 최현숙의 이야기를 담은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홍지유·한영희, 2009)까지, 실제 인물과 사건, 그들을 다룬 기존 작품이 여럿 떠오른다. 이를 부정하거나 “나는 다르다”고 선을 긋기보다는 오히려 전부 껴안으려는 태도가 느껴지는데. 이유진_ 출발은 현실적 욕구였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장편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있는데 불안했다. 때마침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공고가 마감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상태였다.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선 웃긴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감 있고 대중적인 코미디를 꼭 해보고 싶었다. 한편, 영웅 서사에도 관심이 있었다. 처음 쓴 로그라인은 서울에서 레즈 바를 운영하던 중년 레즈비언이 고향에 내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퀴어 커뮤니티에도 세대 차이가 있지 않나. 선배님들도 누군가에게는 꼰대일 수 있고. 그런 지점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 사람이 고향에 내려가서 여러 일을 겪으면 재미있겠다고 봤다. 거기서부터 살을 붙여나갔다. 재연이라는 인물을 만들면서는 ‘어른’에 대해 생각했다. 단편 작업할 때부터 좋은 어른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재연에게 만옥이라는 사람이 선물처럼 오길 바랐다. 그런데 그 관계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해서는 재미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더 복잡하고 생생한 관계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짰다. 부모의 죽음을 계기로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에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나는 퀴어 주인공의 서사로는 <공작새>(변성빈, 2024)가 떠오르고, 퀴어 커뮤니티의 역사와 공동체의 속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3670>(박준호, 2025)과도 나란히 놓을 수 있겠다. 두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 공개된 극영화인데 차별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은 없었나. 이유진_ 콘셉트가 겹친다거나 비슷한 작품이 있다는 식으로 크게 의식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반리 장만옥>의 씨앗은 단편 <나들이>(2021)부터 있었다. <나들이>는 중년 동성 커플이 고향에 내려가는 이야기인데, 당시 “이걸 장편으로 보고 싶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중년 레즈비언이 단지 고향을 방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향해서 정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했다. <나들이>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그대로 장편화한 건 아니다. 장편영화로 소화할 수 있도록 캐릭터와 관계, 사건을 새롭게 바꿨다.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퀴어 인물이 더는 설명과 고백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반리 장만옥>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이 이어졌나. 이유진_ 거창한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여기 이하로는 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할 테니, 이제 그다음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욕심. <굿마더>(2020) 만들 때도 그랬다. “나 여자 좋아해, 어떡하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같은 대화는 지긋지긋했다. 딸이 엄마에게 “자, 얘가 내 여자친구야. 이 상황이 힘들어? 그건 엄마가 해결해야지”라고 말하길 바랐다. <나들이>는 중년 퀴어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불온한 당신> 등 다큐멘터리를 인상 깊게 봤지만, 극영화에서는 나이든 퀴어를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Butch up!>(2021)은 권은혜, 해준 배우와 뭔가 하나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임했다. 해준 배우와는 <신의 딸은 춤을 춘다>(변성빈, 2020) 이후 친분이 생겼는데, 연기를 계속하고 싶어도 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두 배우와 함께 복닥복닥 즐기며 찍었다. 한편, <이반리 장만옥>은 내 필모그래피에서 ‘퀴어 영화’로 분류되는 작업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다. 이쯤에서 한 번 정리해야겠다고 여긴 건가? 이유진_ 앞으로 ‘퀴어 영화’라는 점이 전면에 강조되는 작품은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영화에 퀴어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건 좋다. 기본적으로 <이반리 장만옥>도 ‘어떤 퀴어 영화를 만들까?’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생각하며 작품이다. 저예산 독립영화이지만, 나름 스케일이 크고 대중적 감각도 있는 블록버스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에는 의도적으로 ‘더 가는’ 지점이 있다. 현실적인 설득력이나 개연성보다, 이 세계가 가닿고 싶은 감정의 크기를 믿고 밀어붙이는 구간들. 일반적인 제작 시스템 안에서 작업했다면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이유진_ 처음부터 무조건 ‘넘치는 해피엔딩’으로 가고 싶었다. 이런 영화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 앤 캐치에서 대상도 받고 여러 비즈니스 미팅 기회도 있었는데, 제작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그렇게는 못 만들겠다” 싶더라. 누군가가 결합하는 순간, 본래 기획에서 많은 것이 달라질 듯했다. 결국 내가 제작까지 맡았다. 힘들었지만, 스태프들 모두 내 의도를 이해하고 함께해준 덕분에 무사히 촬영했다. 오히려 고민이 많았던 건 편집 단계였다. 처음 편집본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 정도 나왔다. 완성하고 두세 달쯤 지나 심심해서 다시 봤는데 지루하더라.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이 영화를 전혀 모르는 분들께 보여드렸다. 이언희 감독, 모은영 프로그래머, 구정아 PD 등을 찾아 갔는데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가 있었다. 너무 친절하다는 것. TV 드라마처럼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나 싶었다. 그때부터 영화라는 형식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다시 고민하게 됐다. 결국 큰마음 먹고 사업자 대출을 받은 후, 새로 편집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남기고 비워야 할지 계속 고민하며 결과적으로 30분 이상 덜어냈다. 그러다 보니 후반 작업이 굉장히 길어졌다. 믹싱도 DI도 다시 해야 했고, 음악도 갈아엎어야 했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드라마적 감각이 좋다고 느꼈다. 제한된 공간에서 장면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하고, 장르에 어울리도록 난이도를 조절하더라. 이유진_ 어떻게 생략할지, 어떤 부분을 상상에 맡길지 고민했다. 다 설명하지 말자며 빠진 신도 꽤 있고, 압축된 부분도 많다. 촬영 스케줄만 놓고 보면 거의 TV 드라마를 찍는 줄 알았다. 23회차에 모든 분량을 소화해야 했고, 결국 하루에 7신씩 찍었다. 노다해 촬영감독과 “우리 드라마 찍으면 잘하겠다” 농담하기도 했다. 애초에 이 예산으로 지방 촬영을 돌면서 여러 인물과 장면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배는 이미 떠났고 나는 어떻게든 강을 건너야만 했다. 현장에서 순간순간 결정해야 했다. 컷을 압축하고, 어떤 건 날리고, 필요한 건 붙잡았다. 실제 퀴어 당사자를 배우로 기용한 선택도 눈에 띈다. 이들을 피상적으로 등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극 전면에 세워 이야기 흐름을 움직이게 한다. 트위터 오디션 공고도 화제가 됐는데, 이 영화에서 당사자성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진_ 성적 지향은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별 정체성, 특히 트랜스젠더 인물의 경우에는 과연 비당사자가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나로서는 그게 불편했고, 무조건 당사자를 찾자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치트키’를 마련해 뒀다. 만옥이나 금자 같은 인물은 연기를 정말 잘해야 했다. 반면 다른 인물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봤다. 선아 역의 색자 님이나 오디션을 통해 만난 재윤 배우는 첫 연기라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관객이 이들을 좋아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시나리오 안에 그 인물들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요소를 배치하면 되니까. 선아에게는 공연 신이 있었고, 재연은 영화 안에서 유일하게 조명되는 청소년이었다. 어색함조차 그 인물의 일부로 포용할 수 있겠다고 봤다. 내 목표는 <다음 소희>(정주리, 2023)나 윤가은 감독님 영화처럼 경험이 적은 배우들에게서 정교한 연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당사자이자 배우를 꿈꾸는, 연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역할이 갔으면 했다. 그때 관객이 “연기가 왜 이래?” 하고 튕겨 나가지 않도록, 영화에 그들을 인물로서 최대한 잘 녹이는 것이 내 몫이었다. 그래서 음악과 공연 신이 중요했다. 선아도, 재연도 그런 장면에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화 전체가 그들을 받쳐주면 된다고 봤다.
성재윤 ⓒ이영진 성재윤 배우는 어떻게 오디션에 참여하게 됐나. 본래 사진 작업을 하고,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성재윤_ 타이밍이 잘 맞았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사진 작업을 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글과 사진으로도 안 풀리는 뭔가가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연기 워크숍 같은 데라도 나가볼까 하던 중이었다. 마침 친구가 트위터 오디션 공고를 보고 “너 이거 한번 해봐” 라며 링크를 보내줬다. 처음에는 내가 연기를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친구가 지원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지원서나 한번 내보라고 하더라. (웃음) 운 좋게 서류 합격 후 오디션을 봤다. 1차에서는 간단한 대본만 읽고 갔는데, 2차 오디션 때는 훨씬 긴 대본을 받았다. 읽어보니 재밌더라. 그때부터 욕심이 났다. 감독님이 재연에게 좋은 어른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그 마을 어른들이 좋았다. 그들 사이에 있는 재연이 되고 싶었다. 이유진_ 오디션 보면서 놀랐다. 일반 배우도 계셨고 처음 연기를 해보려는 분들도 많았는데,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퀴어 당사자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재연 배우는 눈에 띄었다. 처음이라 어색할 수 있는데도, “이 신도 한번 해볼까요?” 물으면 금세 받아들였다. 낯선 자리에서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눈치를 안 본다고 해야 하나? 성재윤_ 그전에는 몰랐는데, 오디션을 보면서 나한테 그런 면이 있구나 알게 됐다. 이유진_ 다른 좋은 분들도 많았지만, 재윤 배우를 보면서 이 캐릭터와 정말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교복을 입은 재연이 머릿속에 바로 그려졌다. 성재윤_ 공고에 몇몇 조건들이 적혀 있었다. 자전거를 잘 타면 좋겠다거나, 남자 교복을 입는다거나. 나는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남자 교복도 입어보고 싶었다. 그런 조건들이 맞아서 더 욕심이 생겼다. 아마 특기 영상도 자전거 타는 걸로 보냈을걸? 딱히 내세울 게 없는데 ‘이거다!’ 싶더라. 친구가 자전거 타는 걸 영상으로 찍어줬던 기억이 난다. 성재윤 작가가 연기를 한다니, 아예 모르는 신인 배우가 아니라서 더 놀랐다. 카메라가 익숙하다고는 해도 어떤 인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호흡하는 일은 꽤 다르지 않나. 어떤 연습이나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사진과는 또 다른 종류의 쾌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성재윤_ 우선 엄청 재미있었다. 물론 걱정도 했다. 늘 카메라 뒤에 있다가 앞에 서자니 낯설었고, 내가 너무 드러나는 느낌이기도 했다. 카메라라는 기계를 아니까 자꾸 시선이 그리로 가고. 근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즐거움이 크더라. 교복 입고, 자전거를 타고, 좋은 스태프들과 함께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작가로 활동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작업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0부터 10까지 내가 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 현장은 이미 감독이 판을 만들어놓지 않나. 놀이터로 뛰어 들어가서 신나게 놀면 되는 느낌이었다. 창작자에서 플레이어로 위치를 전환하는 경험이었는데, 그 전환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 퍼포먼스하는 친구들을 보면 플레이어의 역할만 맡는 걸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던데, 나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그간 작업한 사진을 살펴보면서 통제 욕구가 꽤 강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한데, 배우는 촬영에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많지 않나. 성재윤_ 그걸 아니까 애초에 통제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던 것 같다. 만약 앞으로 연기를 더 하게 된다면, 기술을 익히고 매체 특성을 연구하고 나면 통제 욕구가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이반리 장만옥> 찍을 당시엔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민폐 끼치지 말자, 내 몫만 잘하자’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나. 딱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어떤 신을 찍으러 가는 길에 선배들이 엄청 긴장된다고 하신 적이 있다. 경력도 경험도 많은 베테랑이 떨린다고 하니 신기해서 아직도 그러시냐고 물어봤다. “많이 해봤으니까 더 긴장하는 거”라고 하시더라. 아무것도 모르면 차라리 무서울 게 없다고. 그때 깨달았다. 맞네, 내가 몰라서 괜찮은 거네.
이유진, 성재윤 ⓒ이영진 첫 영화에서 의외로 쉬웠던 것과 예상치 못하게 어려웠던 것을 하나씩 꼽는다면. 성재윤_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카메라 앞에서 정해진 위치를 맞추며 움직이는 일이었다. 몇 걸음을 가서 어디에 서야 한다거나, 카메라와 어느 정도 떨어져야 한다거나 하는 약속들. 어느 촬영 현장에나 있는 규칙이겠지만, 나는 처음이다 보니 은근히 어렵더라. 이것저것 신경 쓰는 와중에 자연스러워 보여야 해서. 이유진_ 공간이 협소해서 카메라 동선과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미용실 같은 경우엔 전면이 거울이다 보니 촬영 공간이 특히나 좁았다. 재연의 아지트로 나오는 컨테이너도 그렇고. 성재윤_ 의외로 쉬운 건 대사를 외우는 일이었다. 그 시기에 영어 공부를 해야 했는데, 단어나 문법이 도무지 안 외워졌다. 반면 재연의 대사는 술술 입에 붙었다. 재연이 만옥을 왜 이렇게 대하는지, 아빠에게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너무 알겠으니까. 지지부진한 영어 공부와 비교되면서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의미를 이해해야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이유진 감독 작품에는 늘 배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내게 필요한 사람, 혹은 나와 만나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사람을 알아차리는 비결은 뭘까. 이유진_ 비결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확신이 서야 작품에 들어가는 편이다. 영화 만들면서 오디션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전에는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고, “이 배우를 어떻게든 내 캐릭터로 만들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생기면 연락을 드렸다. 금자 역의 김정영 선배님도 처음에는 고민이 많으셨다. “선배님, 제가 정말 멋있게 그려 드릴게요” 약속했다. 올블랙 의상을 입었을 때도, 돈가스 플러팅 장면을 찍을 때도 선배님은 갸우뚱하셨는데, 나는 모니터 앞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배우는 자기 모습을 완전히 객관화해서 보기 어렵다. 보통은 자신의 연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감독이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배우를 관객에게 어떻게 비주얼라이징할지, 어떤 캐릭터로 소개할지 잘 판단하고, 그에 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베테랑 배우들과 작업한 경우가 유난히 많은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소통하는 편인가. 이유진_ 연기에 관해서는 많이 열어둔다. 그만큼 디테일도 자주 바꾸는 편이다. 모자를 쓰면 재미있겠다 싶으면 그렇게 해보고, 배우가 아무리 잘 소화해도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지면 바로 바꾼다. 연기는 기본적으로 배우에게 선택을 맡기되, 영화의 톤 앤 매너에서 벗어난다고 느껴질 때는 짚는다. “선배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좀 과해요.” <이반리 장만옥>은 코미디 영화다 보니 배우들이 연기 톤과 애드리브를 다양하게 준비해 왔다. 그러면 촬영 전에 인사하듯 여쭤보는 거다. “선배님, 오늘은 몇 개 준비해 오셨어요? 3개? 5개?” (웃음) 선배님들은 캐릭터를 어떻게 돋보이게 할지 경험적으로 알고 계셨고, 앙상블을 만드는 데도 숙련되어 있었다. 배우들이 잘하니 신이 나더라. 유쾌한 현장이었고, 나는 전체 흐름과 균형을 신경 쓰면서 그 연기들을 즐기기만 하면 됐다. 성재윤 배우는 배우들과 합을 이루면서 어떤 케미를 느꼈나. 성재윤_ 우리가 2023년 5월에 촬영했으니 딱 3년 됐다. 시간이 꽤 흘러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현장에서 만난 모든 배우가 대단했다는 느낌만은 선명히 떠오른다. 잠깐 등장하는 배우부터 극을 이끄는 선배들까지 전부 믿고 갈 수 있는 분들이었다. 상대가 불안했다면 나도 같이 흔들렸을 텐데, 다들 인물에 한껏 몰입해 있었다. 재연을 괴롭히는 정수 역의 정순범 배우도 촬영 대기할 때는 그냥 평범하게 “어젠 뭐 했어?” 수다 떠는데, 촬영 들어가면 바로 짜증나는 일진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 나도 ‘아, 나 지금 당하고 있구나’ 하며 자연스레 빠져들었다. 아빠 철주도 되게 얄밉지 않나. 박완규 선배님이 그 느낌을 너무 잘 살려 주시니까 연기하면서 실제로 열받았다. 누가 그러더라. 연기는 상대와 맞추는 일이라고. 내가 뭘 하겠다며 버티고 서 있으면 안 되고, 완전히 상대에게 기대야 연기가 나온다고. 작업하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재연의 말간 얼굴에는 종종 외로움이 비치는데, 극이 전개될수록 그 위에 약간의 반항심과 귀여움도 끼어 든다. 두 사람은 재연을 어떤 아이라고 생각했나. 이반리라는 농촌 마을에 사는 열일곱 재연이 가장 원하는 것은 뭐라고 봤는지? 성재윤_ 지금 생각해보면 재연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만옥은 나이 차이가 있지만, 재연에게는 선배이자 동료이자 어른이고 동시에 친구처럼 느껴졌을 거다. 그래서 만옥 앞에서만 나오는 성격이 있다. 재연이 좀 귀여워진다고 해야 하나. 일부러 틱틱대면서 애교도 섞고. 그게 다 좋아서 그러는 거다. 연기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관객으로 영화를 보니 그게 눈에 들어오더라. 지금 쟤가 마음이 편해서 저러는구나. 재연은 딱딱하고 경계심이 많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애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할 수 없고, 그게 공격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만옥에게는 전부 내보여도 되는 거다. 만옥은 재연에게 무척 편안한 존재였을 것 같다. 이유진_ 나는 재연을 내향적인 아이로 봤다. 평소에는 만옥에게만 틱틱거리고, 소수의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면서 사랑스럽게 다가가는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부모에게 “나를 인정해줘” 요구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않나. 재연에게는 ‘안 들키면 되지’ 하는 회피의 마음도 있다. 그저 아지트에 혼자 이것저것 꾸며놓고 노는 걸 좋아하는 친구인데, 동시에 ‘나도 서울에 있는 퀴어바 가보고 싶다’ 같은 호기심도 있고. 그런 에너지가 만옥을 만나면서 꿈틀대는 거다. 영화 후반부에 재연이 아빠에게 화내는 장면이 중요했다. 재연이 처음으로, 제대로 성질을 내는 순간이었으면 했다. 성재윤_ 내향적인 성격도 숫기가 없어서라기보다, 제 속마음을 마음껏 펼쳐낼 수 없어서 생긴 경계심에 가까운 것 같다. 표현도 서툴고, 아직 어리지 않나. 열일곱 살이고. 그래도 만옥 앞에서는 까불고 귀엽다. 아무리 시골에 사는 청소년이라도 저렇게 순박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웃음) 이유진_ 재윤 배우에게 촬영 현장이 처음이지 않았나. 그 어색한 공기 자체가 재연이라는 인물의 덜 영근 느낌과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현장에서 배우를 지켜보며 재연이라는 인물을 더 다듬어 간 부분도 있다. 배우가 점점 촬영에 익숙해지면서 귀여워지는 순간이 보였다. 그걸 보면서 캐릭터를 더 디벨롭했다. 편집 때도 그 방향으로 갔고. 성재윤 배우는 자전거를 탄 채 트럭을 막아서는 첫 장면부터 몸 쓰는 장면이 많다. 춤 역시 처음에는 몸을 가볍게 흔드는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무대 공연으로 확장된다. 어떻게 준비했나. 성재윤_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춤에는 정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 것이 아니구나’ 했는데, 어쨌든 작품을 시작했으니 해내야 하지 않나. 다행히 감독님이 “완벽히 출 필요 없다. 재연은 춤을 좋아하는 청소년이고 즐기는 느낌이면 된다.”라며 서툴러도 괜찮다고 하더라. 그 말에 안심하긴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소영 배우가 안무를 맡았는데, 사전에 준비하는 과정부터 촬영 내내 함께해 줬다. 영상을 찍어 보내면 피드백 주고, 만나서 같이 연습하고. 이유진_ 내 입장에서는,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붙는 그 느낌이 너무 귀여웠다. 클럽 무대 장면은 딱 학예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연을 지켜보는 이들 모두 ‘엄마 미소’를 짓지 않나. 성재윤_ 나는 그 장면을 못 보겠다. 요즘은 영화 볼 때 거리감이 생긴다. “쟤는 내가 아니라 재연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그 춤추는 장면만큼은 자꾸 나랑 겹쳐 보이고 민망해서 못 보겠다. 이유진_ 이제 막 데뷔하는 남자 아이돌처럼 분장시켰다. 김사월 음악감독에게 노래도 케이팝 느낌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김사월 음악감독과는 여러 차례 손발을 맞췄다. 이번에는 말한 대로 케이팝부터 힙합, 블루스, 맘보까지 영화에 사용한 음악의 폭이 상당히 넓다. 작업 과정은 어땠나. 이유진_ 김사월 음악감독은 만능이다. 완전히 신뢰하는 아티스트다. 좋은 동료와 계속 작업하는 것이 나의 생존 전략 같기도 하다. <나들이>부터 함께했고, <Butch up!> 때도 고생을 많이 했다. 이번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의 ‘짬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사월 음악감독과의 협업은 중요했다. 다양한 결의 음악을 같이 해봤으니 이번에는 일종의 파티처럼 가보자 싶었다. 특히 맘보 음악은 길이도 길고, 중간에 무드가 바뀌어야 했다. 서로 레퍼런스를 공유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작업했다. 배우들에게 “좋은데 한 번만 더 갈까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음악도 그런 식이었다. (웃음) 솔직히 사월 음악감독이라면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사람이고, 배우의 감정에도 잘 동기화한다. 단순한 협업자가 아니라 오래 의지해온 동료 같다. 작업을 거듭하면서 둘 사이엔 어떤 신뢰가 쌓였나. 이유진_ 사실 누군가와 작업하다 보면 실력만큼이나 인성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는 TCI 검사를 하면 인내력이 99퍼센트로 나온다. “사람이 이럴 수도 있지, 저럴 수도 있지” 하고 웬만하면 넘기다가, 어느 선을 넘으면 충격을 크게 받는 편이다. 사월 음악감독은 그런 내가 믿고 의지하는 상대다. 예술 선배라고 생각한다. 음악가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존경한다. 작업 외적인 고민이 생길 때도 나도 모르게 사월 님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그러면 늘 좋은 조언을 해준다. 게다가 작업 영역이 정말 넓은 아티스트이고, 어떤 옷을 입어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한다. 무엇보다 뭘 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최선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르지 않나. 사월 님은 정말 끝까지 간다. 노다해 촬영감독도 고생했을 것 같다. 컷도 신도 참 많은 영화인데,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가운데 경제적인 선택을 내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우스 신이나 “뒤돌아 보지 마세요” 장면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영리한 선택도 돋보인다. 이유진_ 사전에 로케이션이 확정되고, 그 안에서 콘티를 상상하고 계획했다면 좋았을 거다. 현실은 달랐다. <Butch up!> 하면서도 느꼈지만, 노다해 촬영감독과 내가 잘 맞는 지점 중 하나는 빠른 적응력이다. 박정현 PD가 없는 살림에 모텔을 전전하며 로케이션을 찾아 줬지만, 모든 공간을 세팅할 예산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제작지원을 여러 곳에서 모아 만든 작품이라 부안, 부여, 인천, 서울 등 여러 지역을 오가며 찍었다. 답사를 가면 그 지역을 한 번에 훑고 와야 했고, 편하게 다시 가서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즉흥으로 결정해야 했던 부분이 많다. 사전에 2주간 끙끙대며 만든 콘티가 촬영 첫날부터 무용지물이 되더라. 매일 밤 촬영 끝나면 노다해 촬영감독과 머리 맞대고 콘티를 새로 짰다. 성재윤_ 진짜? 전혀 몰랐다. 이유진_ “뒤돌아보지 마세요” 장면도 현장에서 공간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노다해 촬영감독과 한 가지 미리 약속해둔 원칙은 있었다. ‘레이어를 잘 이용하자. 전경과 후경을 활용해서 코미디를 해보자.’ 과수원 신도 원래 콘티에는 컷이 꽤 많았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20분 안에 찍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풀샷으로 후경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만옥의 감정은 뒤에 바스트로 잡자는 결론이 났다. 전경과 후경을 활용해서 한 번에 두 가지를 담는 식이었다. 그렇게 회차마다 콘티를 계속해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코미디, 뮤지컬, 서부극 등 여러 톤을 오가는데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리듬 안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장 조건이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이 놓치지 않으려 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이유진_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대화를 나누며,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합의했다. 우리가 같은 페이지에 있다는 걸 확인해두면, 현장에서 세부사항이 바뀌어도 서로 길을 헤매지 않는다. 다해 촬영감독이 어떤 걸 제안하면, 한 번 믿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다해 촬영감독도 내가 어떤 걸 강하게 주장하면 믿어줬고. 다행히 우리는 “나 이거”라고 말하면 “아 그거” 하고 바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그 합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스크립터와 조감독이 따라오기 힘들어 할 정도였다. 둘 다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종일 고민하는 대신에, 어떻게 변경할지 생각하는 데 집중했다. 이 영화의 중심을 잃지 않는 선에서 대체안을 찾으려 했다. 마냥 세팅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노다해 촬영감독은 나보다 현장 경력이 훨씬 많아서 판단 속도가 빨랐고, 나도 그 속도에 맞춰 작업했다. 무엇보다 일단 완성하자는 마음이 컸다. 뭘 포기하든 완성은 하자. 물론 우리에게도 원하는 룩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테스트 촬영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이런 거 해보려나?” 했다. (웃음) 다만 현시점에선 주어진 조건에 적응해야 했고, 공들여 찍어야 하는 장면은 분명히 정해져 있었다. 모든 장면을 그렇게 찍을 수는 없었다.
특별히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 이유진_ 캐릭터마다 달랐다. 선아, 그러니까 색자 배우님에게는 공연 장면이 중요했고, 재연의 저수지 장면도 그 무드를 살려야 했다. 가장 큰 건 역시 퀴어 퍼레이드 신이었다. 꼭 드론으로 찍고 싶었다. “다른 건 다 포기했으니 이것 하나는 맡겨달라”라는 마음이었다. 드론 업체에도 독립영화라고 읍소해서 최대한 싼 가격에 불렀다. 그날 마을회관 앞 장면을 하루 만에 다 찍어야 했다. 보조출연도 많고, 감정도 있고, 나레이션도 있고, 나중에는 춤도 춘다. 그걸 해지기 전에 끝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다. 드론이 들어오면 촬영 속도는 더 느려진다. 나는 노다해 촬영감독과 차 안에서 드론 화면을 보고, 현장에서는 연출팀과 제작팀이 인원을 관리했다. 무전도 잘 안 됐다. 정말 뛰어다니면서 찍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나중에 배우와 스태프도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고 인정해 주더라. 성재윤_ 현장에서 이처럼 뚝심 있게 어떤 선택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조건과 상황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감독님은 “이건 해야 돼” 하는 건 꼭 지켰다.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유진_ 대신 나도 패를 많이 내놓는다. “30분만 더 주세요. 대신에 다음 신은 10분 안에 찍을게요.” 조감독과 협의하고 나면, 무조건 그 약속을 지킨다. 안 지키면 신뢰가 떨어지니까. 30분에 끝내겠다고 했으면 29분 안에 마친다. 현장에서 애플워치 보는 게 일상이다. 그렇게 신뢰를 쌓아 놓아야 “이건 꼭 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들어준다. 애초에 이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양보하고 조절하면서 다들 힘을 합쳐 만들어 준 거다. 현장에서 가장 짜릿하거나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이유진_ 촬영 종료 시간을 지켰을 때가 제일 뿌듯했다. “오늘도 시간 맞췄다!” 하는 안도와 성취감. 이러면 안 되는데. (웃음) 숙소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시골 촬영이라 여건이 쉽지 않았는데, 부안에서는 괜찮은 호텔에서 묵었다. 라면도 공짜로 먹을 수 있었고, 다들 얼굴 피는 게 보이더라. 사람들이 편안하구나 싶을 때 이상하게 좋았다. 사실 감독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제작자들이 있고 각자 잘하는 역할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 작업은 여건상 여러 일이 내게 몰리는 구조였다. 한편으론 나도 스태프들에게 많이 기됐다. 스태핑과 캐스팅하며 정말 복 받았다고 느꼈다. 돌이켜보면 온실 속 화초처럼 영화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무슨 복으로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만났지 싶을 정도였다.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현장이었고, 덕분에 즐겁고 든든했다. 물론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마을회관 신 찍던 날은 처음으로 차에 가서 울었다. 마음처럼 안 나왔고, 다 못 찍은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편집하나 싶었거든. 촬영장에서 늘 뜀박질하는 기분이었겠다. 그만큼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유진_ 그간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 없는 조건에서 작업했던 터라, 얼마간 익숙해진 부분이 있다. 단편 만들 때부터 항상 제작을 겸했다. 촬영하면서 시간 확인하는 게 익숙하다. 현장에서 뭔가 안 된다고 하면 “아니에요, 그래도 저는 이걸 하고 싶어요” 강하게 주장하는 편도 아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로 곧장 생각이 넘어간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단 해결하자는 쪽이다. 샷 하나를 위해 며칠 공들이는 감독들을 보면 부럽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연출뿐만 아니라, 촬영 여건과 제작 조건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언젠가는 현장에서 오롯이 감독으로 존재하며 창작에만 몰두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학교나 전문 기관을 거치지 않고, 시스템 바깥에서 장편 작업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영화에서 만옥 대사 중 “친구면 걱정 말고 응원을 해라”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며 받았던 최고의 응원은 뭐였나. 이유진_ 정말 힘들었고, 많이 배웠다. 도움도 원 없이 받았다. “이거 더는 못 하겠는데” 할 때마다 누군가가 나나타서 도와줬다. 제작지원을 받는 과정에서도 이 이야기가 응원받고 있다고 느꼈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이반리 장만옥>을 아껴 주는구나 싶더라. 그래선지 나는 밥도 간식도 잘 챙겨 먹었다. 감독답게 좀 안 먹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입맛은 안 없어지더라. (웃음) 생각해보면 걱정보다 응원을 많이 받은 영화였다. 누가 걱정해도 내가 잘 안 들은 걸 수도 있고, 그걸 응원으로 들은 걸 수도 있지만. 가장 기억나는 건 우정출연해준 분들이다. 40명 정도가 아침 7시에 모여 버스를 타고 지방 촬영장까지 와줬다. 주말이라 길도 막히고 지쳤을 텐데, 누구 하나 힘들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재밌다며 화이팅 해주고 가더라.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거든. 그분들 역시 이런 영화가 나오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싶다.
영화는 해피엔딩을 향해 힘껏 달려간다. 재윤 배우에게는 이 결말이 어떻게 다가왔나. 성재윤_ 재연과 만옥이 마지막에 무지개를 보면서 뻔하다고 하지 않나. 그게 <이반리 장만옥>의 성격이자 정체성인 것 같다. 무지개는 뻔하디뻔한 플래그이고,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그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지만, 그래도 보면 좋은 걸 어떡하나. 그런 마음이 이 영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가 뻔하게 흘러가는 부분도 있다. 재연이 서울로 올라와 드랙을 하는 것 또한 클리셰일 수 있다. 그런데 퀴어 영화 중에는 “나 설마 얘 좋아하나?” “엄마 아빠한테 어떻게 말하지?” 하다가 끝나거나, 비극으로 향하는 영화가 많았다. 뻔하게 행복하고 뻔하게 슬픈, 그러다 또 뻔하게 괜찮아지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유진_ 이제 <이반리 장만옥>을 넘어서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를 바란다. 커밍아웃 스토리에서 나아가, 그 사람들이 현재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영화들. 성소수자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사는지, 애가 없다면 또 어떤 가족을 꾸리는지 등등. 개인적으로는 연희동 국제학교를 배경으로 성소수자 부모들이 갈등하고 성장하는 이야기 같은 걸 보고 싶다. (웃음) 성재윤_ 그렇게 하나하나 장을 펼쳐 가는 게 필요하다. 이 엔딩을 두고 누군가는 “또 무지개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지개 스티커 불어 있는 식당을 보면 왠지 기분 좋고, 해외여행을 갔는데 어딘가에 무지개 플래그가 걸려 있으면 괜히 마음이 놓이지 않나. 질리지만 또 반갑고 좋다. 이유진_ 해피엔딩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쁜 일은 늘 이유 없이 몰아친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맥락도 없이 참사가 벌어지고 계엄령이 선포된다. 그런데 행복한 일을 상상하려면 이유가 너무 많아야 하더라.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갖춰야 하고. 그렇게 조건을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행복을 상상하는 내가 너무 작아진다. 최근 MBC 뉴스에서 동성혼 법제화 관련 헌법소원 기사를 봤다. 괜히 들떠서 ‘이러다 내일모레 동성혼 법제화하는 거 아니야?’ 한다. 갑자기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그런 상상을 배반하는 안 좋은 뉴스들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나쁜 뉴스에만 파묻혀 있으면 힘이 나지 않는다. 내 삶도 더 힘들어 보이고. 무언가를 당장 바꾼다기보다, 말도 안 되게 행복한 상상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옥의 이장 선거에 청년 퀴어들이 몰려와 축제를 벌이는 장면도 그렇다. 주민들이 직접 뽑는 건데 왜 외부인들이 와서 난리냐는 말이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라고, 싶더라. “세상은 너무 불행해. 동성혼 법제화도, 차별금지법 제정도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계속 안 좋은 생각만 하면 움직일 수가 없다. 뭔가 될 것 같을 때, 가능성이 보이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움직인다. 이 영화는 그런 분위기로 가고 싶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단편부터 데뷔작까지 일종의 퀴어 연대기를 써왔다. 창작자로서의 욕구가 궁금하다. 잘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느꼈는지. 감독의 내적 동기는 어디에 더 가까운가. 이유진_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에 이 이야기가 아직 없네? 그러면 내가 해야지” 같은 마음이다. 동시에 그때그때 내 개인적인 고민을 반영하기도 했다. <굿마더>는 엄마와의 관계를 고민하며 만들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교사로 일하다 명예퇴직하셨고, 더불어민주당의 오랜 지지자이기도 하다. 나는 20대 내내 페미니즘 문제로 엄마 아빠와 싸웠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보도됐을 때, 안희정을 감싸는 부모님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 시간을 거치던 중에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에게 동성애를 들이밀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런 식으로 때마다 내가 골몰하던 이슈와 내러티브에 대한 호기심이 만나서 시나리오를 쓰는 일로 이어졌다. 아무도 안 한 이야기를 발견하면 정복욕을 느꼈던 걸까. 혹은 왜 여태 이야기가 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 이유진_ 둘 다 아니다. ‘아무도 안 하면 내가 써 봐야지’라는 생각은 아주 작은 시작점이다. 그 빈자리에 들어갔을 때 진짜 중요한 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지다. 어떤 아이러니가 있고, 어떻게 그걸 극으로 소화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들이> 때는 중년 동성 커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재미있을까. 로드무비를 하면 좋겠는데, 어떤 조건이 적절할까. 장례식장에 가야겠다. 장례식인데 고인이 전 남편이면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써나갔다. 내가 깃발을 꽂겠다기보다는, 마침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곁에 좋은 동료들도 있으니 재밌게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반리 장만옥>도 마찬가지였다. 퀴어 코미디 영화가 없으니 만들고 싶었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중년 레즈비언이 나오는 영화는 많지 않고, 거기에 코미디 장르는 더 드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 통하는 농담인지, 대부분 관객도 이해할 유머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순간은 없었나. 이유진_ 내부 조크를 30퍼센트 정도로 구성했다. 우선 대중적인 코미디로 쭉 가고, 그 사이사이에 아는 사람은 아는 농담을 채워 넣으려 했다. 어쨌든 성소수자라고 해도 성소수자 개그에만 웃는 건 아니지 않나. 다른 영화를 보면서도 웃고, 다른 상황에서도 웃는다. 나는 생각보다 대중영화를 좋아하고, 익숙한 감각과 낯선 감각을 잘 섞고 싶었다. 인물에게서 자극을 많이 받는 타입인가 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근에는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앞선 것 같다. 결국 내가 가진 이야기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보고 싶은 욕구가 큰 것처럼 보인다. 이유진_ 그래선지 내 필모그래피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거의 없다. 독립영화에서는 보통 자기 경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데 나는 그런 지점이 별로 없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 계신 분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알았어요?”라며 물은 적이 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역사나 세대 교체, 내부 갈등 같은 이야기 말이다. 나는 실제로 그걸 겪거나 들어서 쓴 게 아니라, 만옥이라면 그러겠지 상상하며 썼다. ‘만옥이라면 이때 열받아서 후배 뒤통수를 후려치겠다’ 하는 식으로 감정을 이입하다 보니 나온 장면이다. 근데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니 신기하더라.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해도 결국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처음 모습에서 멀어진다. 씨앗만 내 이야기일 뿐, 완성된 글은 새로운 이야기인 거다. 그래선지 나는 피드백 받기를 좋아한다. 부정적인 평가나 비판을 받아도 딱히 공격 받는다는 느낌이 없다. 현재 준비하는 작품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독립 장편영화로 만들고 싶은 드라마이고, 다른 하나는 장르물이다. 궁극적으로는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장르라면 어떤 쪽인가. 이유진_ 코미디인데, 짬뽕이다. 추리 코미디, 오컬트 코미디 같은 것들.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는 무엇인가. 이유진_ 요즘은 잘 못 봤는데, 예전에는 <극한직업>(이병헌, 2019)을 열 번도 넘게 봤다. 팀워크로 굴러가는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인물이 떼로 등장해서 움직이는 영화들. 이유진_ <도둑들>(최동훈, 2012)처럼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각자 개성을 뽐내면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길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에 끌린다. 재윤 배우는 얼마 후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개봉 시기에 아쉬운 마음은 없나. 성재윤_ 예전부터 일본에 있는 FTM 커뮤니티 사람들과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원래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떠나려 했는데, 내 작업도 하고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보니 시기가 계속 미뤄졌다. 더는 미루지 말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다른 건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 <이반리 장만옥> 개봉 시기와 겹치는 점은 아쉽다. ‘개봉 이후에 작품 제안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내가 일본에 있으면 연기하기 어려워지려나?’ 고민되기도 하고. 이번 작업을 통해 연기에 재미를 느꼈다. 물론 운이 좋았다는 걸 안다. 함께하는 스태프도, 현장 분위기도, 캐릭터와 이야기도 다 좋았으니까. 그렇기에 또 다른 기회가 생기는 경우를 상상하게 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거기서 영화를 찍을 수도 있고. 성재윤_ 그렇지, 앞일을 누가 알겠나. 내가 영화를 찍게 될 줄도 몰랐는데. 일단은 일본에 가서 새로운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다. 이유진_ 나는 영화 개봉을 마치면 주 5일 아르바이트하면서 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나면 글 쓰는 생활. 모든 창작자가 꿈꾸듯 단순한 일상을 원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틈틈이 집중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괜히 기분 좋다. 요새 번아웃이 오다 보니 절실함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성재윤_ 무슨 마음인지 안다. 나도 그렇거든. 일본에 가는 건 일종의 도피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으면 여러 종류의 일과 역할을 계속 소화해야 하니까. 일본에 가서 일하고 내 작업하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 번아웃이라니 개봉 앞두고 부담을 느끼는 걸까. 이유진_ 단지 개봉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감독으로서 영화의 의의나 의도를 말하다 보면 조금 오그라드는 순간이 있다. GV나 인터뷰에서는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할 것 같거든. 물론 건강한 웃음과 안전한 공간을 바랐다. 당연한 일이다. 성소수자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대의로만 이 영화에 접근했던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웃긴 영화를 잘 만들고 싶었다. 굳이 사명감을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관객도 감독이랑 비슷한 마음일 것 같거든. “대의는 무슨, 일단 웃기기나 해!” (웃음) 성재윤_ 맞다. 그냥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은 거다. 함께 웃고 즐기며, 관객끼리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이 되게 짜릿했다. 나도 객석에서 그 기쁨을 누렸다. 스크린을 보는 동시에 관객들을 둘러보게 되더라. 이유진_ 여럿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러티브부터 사운드까지 다각도로 고민했다. 가능하면 극장에서 봐주시면 좋겠다. 혼자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재밌을 거다. 영화 공개하고 다양한 분들께 감상을 들었다. 그중엔 중년 헤테로 관객도 있었는데, 재밌다고 하시더라. 이 영화의 유머와 웃음에 충분히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 끝으로 두 사람에게 ‘선배’란 어떤 존재인지 묻고 싶다. <이반리 장만옥>은 인생에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이 들며 조금 구겨질 수는 있어도 곁이 있다면 혼자 망가지지 않는다고, 새롭게 변화할 수도 있다고. 그런 생각이 영화 속 ‘선배’라는 호칭에도 담겨 있는 듯하다. 둘에게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직접 알든 모르든 내 선배라고 생각하는 이는 누구인가. 이유진_ 질문을 듣고 나니 변영주 감독님이 떠오른다. 내게 어른이나 선배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편안했던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과 많이 부딪혔다. 학교에서 부당하다고 느끼면 교육청에 전화했다가 싸가지 없다고 혼났다. 학교에서 “애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다그치면, 나도 안 지고 “선생님이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으셨잖아요” 쏘아붙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현장에서 중년 여성 선배들을 잔뜩 만났다. 그들과 작업하면서 배우고 채운 사랑이 있다. 선배들은 강하고 성숙한 동시에, 나처럼 약하고 불안정했다. 우리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구나. 그걸 깨닫는 과정이 곧 영화를 만드는 시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변영주 감독님은 광주여성영화제에서 딱 한 번 뵌 적이 있다. 내가 “감독님, 생각보다 까칠하시네요”라고 했더니, “너는 그럼 내가 착할 줄 알았냐?” 하시더라. 나도 나인 게 “방송에서는 착하게 말하셨잖아요” 하고 받아쳤다. (웃음) 그때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감독님을 지켜보며 궁금했다. 저분은 여기서 무엇을 얻어가실까. 편하게 이야기할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뭔가를 요청하거나 부탁할 텐데.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최근 감독님께 연락해서 <이반리 장만옥> GV 모더레이터를 부탁드렸다. “도와주세요” 했더니 긴 말씀 없이 가능한 날짜를 딱 알려주시더라. 예전에는 이상적인 어른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다. 근데 살다 보면 환상이 깨진다. 기대했던 이에게 실망하고, 완전무결한 존재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도 어떤 방향을 정하고 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 불완전하고 모순적이고 까칠한 인간이라 해도,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구나. 그런 태도로 누군가에게 힘을 보탤 수도 있구나. 나도 방향만 잘 기억하면, 그쪽으로 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나름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더라. 그런 마음을 품게 해준 분이 변영주 감독님이다. 여성과 소수자 서사에 가치관을 두고, 이를 꾸준히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이 놀랍다. 내일은 내일의 선배가 떠오르겠지만, 일단 오늘의 선배는 변영주 감독님이다. (웃음) 재윤 배우에게 오늘의 선배는 누구인가. 성재윤_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함께하는 창작 팀 중 하나가 ‘이무기(이태원은 무엇일까 기록하기) 프로젝트’다. 2023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이고, 이태원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커뮤니티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만난 분들을 선배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선배가 없었다. 학교에서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었고, 선배라고 여길 만한 사람도 없었다.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작업하는 문상훈 작가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나처럼 살아본 어른, 내가 겪는 문제를 이해하고 내 상황에 공감해줄 수 있는 어른이 주변에 없으면, 어떤 힘듦을 겪어도 설명할 곳이 없다고. 이무기 프로젝트에서 만난 분들은 그걸 알고 계신다. 이해하고 공감해 주신다. 퀴어는 규범 바깥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방식이 기존의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외롭고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평생 자기 자신으로 살아오신 분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분들이 있다. 색자 님을 포함해 이무기 프로젝트에서 만나는 분들이 다 그렇다. 선배들 생애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 나도 살 수 있구나. 그래도 되는구나. 저분들은 6~70년을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나는 아직 한참 남았구나. 이 힘든 시간을 이미 통과한 사람이 있다는 것, 심지어 그들이 이제는 그 고통마저 웃으며 이야기하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아주 크고 확실한 위로로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는 웃으며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 이유진_ 짧게 말하면, 배움을 주는 모든 사람이 선배인 거네. 성재윤_ 나보다 뭘 더 잘하거나 훨씬 훌륭해서 선배로 느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 된다. 선배들도 나처럼 실수하고 종종 철없이 굴기도 한다. 생애사를 듣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할 때도 있다. 근데 그거, 그렇게 넘어진 사람이 또 일어나서 걸어 왔다는 게 진짜 선배다운 점이다.
성재윤 ⓒ이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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