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뷰: 개봉작] 저마다 어떤, 누구나 한번 <극장의 시간들> | 2026.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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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그라운드 X 영화웹진 '리버스'] 저마다 어떤, 누구나 한번 <극장의 시간들> 윤가은·이종필·장건재 글 차한비 / 사진 이영진 풍경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놓이는 공간이다. ‘극장의 시간들’이라는 명제 아래 사뭇 다른 풍경을 채집한 세 감독에게 최초의 극장을 물었다. 윤가은이 기억하는 처음은 서울극장의 어두운 객석이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들어선 상영관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놓여 있었고, <베어>(장 자크 아노, 1992)가 펼쳐 보인 자연은 압도적이었다. 극장을 메우는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아기 곰은 분투했고, 어른들은 간간이 훌쩍이는 울음소리를 냈다. 한편, 이종필의 기억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방화동의 삼류 극장에서 시작해, 1999년 종로의 단성사와 코아아트홀로 이어진다. 밀레니엄을 앞둔 재수생 시절, 학원과 독서실 대신 극장 의자에 등을 묻었다. 스크린을 가리는 붉은 커튼이 좌우로 젖혀질 때마다 연거푸 새로운 세계에 입장했고, 상영관을 착각한 날조차 아무 불만이 없었다. “뭘 보든 다 좋았”던 시절이다. 장건재의 최초는 문화학교 서울이라는 해방구였다. 신문에 작게 난 광고에 눈길이 갔다.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영화 세 편을 볼 수 있다는 얘기에 혹해 1994년부터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대학생 형들은 불법으로 공수한 비디오에 직접 번역한 자막을 붙였고, 상영 전후로 영화에 관한 해설을 덧붙였다. 시간은 금세 흘렀다. 어른들 속에서 영화를 보며 가슴 뛰던 어린이는 이제 어린이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어른이 됐고, 종로에 매일 출석 도장을 찍던 재수생은 어느덧 짝사랑에서 풀려난 듯 열정과 애정의 차이를 곱씹고 있고, 영화를 아지트 삼아 우주를 탐닉하던 소년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난 후에도 영화 보는 일이 훨씬 즐겁다고 고백한다. 세 감독의 기억은 제각각이지만, 그 중심에는 한 가지 공통된 정서가 흐른다. 극장은 처음부터 영화만을 상영하는 장소가 아니었다는 것. 그곳에는 늦은 저녁의 분주하고 서늘한 공기, 장막이 열리는 찰나에 목격한 떨림, 낯선 이들과 더불어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연대가 겹겹이 쌓여 있다.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하며 제작된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그 감각을 붙잡는다. 이종필의 <침팬지>, 윤가은의 <자연스럽게>, 장건재의 <영화의 시간> 모두 극장을 무대로 삼지만, 각자가 택한 이야기와 주인공,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풍경은 조금씩 다르다. 그렇게 영화는 단지 한 극장에 대한 헌사를 넘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내 극장’의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영화가 완성되기 전까지 서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이종필_ 그럴뿐더러 사실 가은 감독님과는 이번 작품을 계기로 처음 만났다. 작업하면서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단체 채팅방에서 메시지만 이따금 주고받았다. 서로 “뭘 찍고 계시냐” 같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고, 이상한 짤을 보내며 격려하는 정도? (웃음) 아마 영화를 완성하고 씨네큐브에서 자체 시사회를 열었을 때 처음 뵌 걸로 기억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윤가은_ 얼굴 뵙고 인사한 건 처음이지만, 그간 주변 사람들에게 종필 감독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배우 활동도 하셨으니까. 감독님 단편 만드실 때부터 좋아했다. ‘언젠가 한 번은 뵙겠지’ 했는데, <극장의 시간들> 덕분에 연이 닿았다. 이종필_ 몇 년 전에 멀리서 한 번 뵌 적은 있었다. <우리집> GV에 고아성 배우가 특별 게스트로 참석했을 때 보러 갔거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찍기 전이었을 거다. 윤가은_ 근데 종필 감독님은 모르는 인연이 또 있다. 예전에 연희동에서 감독님과 같은 헬스장에 다녔다. (웃음) 한 10년 전 일이다. 한창 <우리들>(2016)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큰맘 먹고 PT를 끊었다. 어느 날 트레이너가 직업이 뭐냐고 묻더라. 영화 일을 한다고 했더니 감독님 얘기가 나왔다. 이종필_ 거기가 약간 내향인을 위한 공간 같은 느낌이지 않나. 가은 감독님이나 나나 ‘여기는 사람들 많이 안 오겠지’ 싶은 곳을 굳이 찾아간 건데. 윤가은_ 그러니까. 결국 돌고돌아 이렇게 만났다. 세 편 모두 극장을 다루지만 그 공간에서 발견한 것은 각각 달라 보인다. 이종필 감독은 기억과 우정, 윤가은 감독은 영화 만드는 과정, 또 장건재 감독은 극장 주변의 길과 사람들을 본다. 이번 작업에서 각자 테마로 삼은 것은 뭐였나. 이종필_ 우선 <극장의 시간들>이라는 제목은 나중에 붙은 이름이다. 특별한 조건이 제시되지는 않았고, 영화에 극장이 등장하면 좋겠다는 정도였던 거로 기억한다. 그 극장이 꼭 씨네큐브여야 한다는 조건도 없었다. 캠페인 영화처럼 만들 필요 없으니 자유롭게 해보라고 하더라. 물론 씨네큐브 25주년을 기념해 제작되는 작품인 것은 맞지만, 거기에 갇힐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극장에서 무엇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영화 안에 극장만 나오면 되는구나. 그럼 나는 뭘 하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윤가은_ 내게는 ‘극장’보다 ‘영화’가 더 큰 키워드로 다가왔던 것 같다. 영화를 다루는 영화, 그 안에 극장이 나오면 좋겠다는 정도의 단서가 있었고, 극장은 조금 나중에 덧붙여진 감각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영화와 극장이 모두 나오면 좋겠다’ 정도였고, 자유도가 거의 100퍼센트였기에 오히려 감독으로서 한 번쯤은 이런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8,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여 감독 35인이 참여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같은 작품을 보던 무렵이기도 했다. 시나리오는 초고에서 정말 많이 바뀌었다. 지금처럼 창작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본래 거울 같은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관객이 스크린을 보고 있는데, 그 스크린에 자신이 투영되는 식의 이미지였다. ‘스크린에 내가 나온다’는 이미지와 생각에서 시작해 현재의 이야기까지 오게 된 셈이다. 장건재_ 창작의 자유가 충분히 주어진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나는 극장을 무대로 삼아보려 했다. 각본은 정지혜 영화평론가와 함께 썼다. 극장을 오가고 또 지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나는 늘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자, 동시에 관객이기도 하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숨어 있는 노동과 존재를 그려보고 싶었다. 일단 이종필 감독이 연출한 <극장의 시간들> 오프닝, 에필로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극장 영사 기사님에게 눈길이 갔고, 흔히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극장을 청소하시는 분들, 그리고 매표소 직원 등을 떠올렸다. 거기에 더해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나온 50대 여성이 그 공간을 오가며 사람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씨네큐브는 다른 예술영화관에 비해 중장년 여성 관객이 자주 찾는다는 점이 특징이니까.
<극장의 시간들> 스틸, 순서대로 <침팬지>, <자연스럽게>, <영화의 시간> 말한 대로 <영화의 시간>은 오랜만에 서울을 찾은 ‘영화’와 극장 청소노동자 ‘우연’의 만남을 줄기로 한다. 상징적이면서도 아주 단순해서 눈에 띄는 이름인데, 왜 인물에게 이런 이름을 주고 싶었나. 장건재_ 거창한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사연은 있다. 15년 전쯤 가르쳤던 학생 중 신영화라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에도 손영화라는 학생이 있다.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영화(映畫)’와 같은 한자로 개명하기도 하고.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신영화에게 연락했다. ‘영화’가 나오는 작품을 찍는데, 혹시 고등학교 교복 배지를 아직 갖고 있으면 빌려줄 수 있겠냐고. 영화에 사용한 배지는 그 친구의 것이다. 우리가 영화 일을 하다 보니 영화라는 이름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예전엔 ‘화’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름이 꽤 많았다. 우연 역시 영화만큼 흔한 이름인 듯하면서도,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일이 결국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나. 그래서 ‘영화’와 ‘우연’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극장과 동네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공원과 학교, 식당을 지나 극장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여정까지 곧 극장 경험이라고 말하는 듯한데. 장건재_ 과거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에 자리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곳을 떠올릴 때 극장만이 아니라 낙원상가 주변의 퀴퀴한 냄새와 풍경까지 함께 곱씹을 거다. 씨네큐브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극장뿐 아니라 극장에 이르는 정동길과 주변 동네를 나란히 떠올린다. 그 부분은 정지혜 평론가의 아이디어였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던 영화를 우연히 극장에 도착하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말로 하면 쉽지만, 솔직히 만드는 입장에서는 큰 과제였다. ‘어떻게 영화를 극장과 만나게 할까?’ 자칫하면 작위적으로 비칠 테니 고민하게 되더라. 결국 영화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극장을 찾은 것으로 설정했다. 그런가 하면 <자연스럽게>는 근방 1km 내에서는 극장을 찾아볼 수 없을 듯한 풍경에서 시작한다. 마치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교외로 놀러 나온 듯한 모습이다. 푸르른 논과 밭에서 출발하는데, 반전을 거듭하는 액자식 구성을 생각하면 전략적 선택처럼 보인다. 윤가은_ 실은 근처에 영화관이 있는 성북구에서 촬영했다. 녹지가 펼쳐지는, 도심 풍경처럼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아이들이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영화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출발해 점차 영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그곳이 가능하면 ‘자연스럽게’라는 제목처럼 자연에 가까운 공간이길 바라기도 했고. 실제로는 너무 더워서 죽을 뻔했다. <세계의 주인>과는 또 다른 의미로 오프닝의 기세가 대단하다. 한 아이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왼쪽에서 셋, 오른쪽에서 또 셋이 우르르 나타난다. 여자아이들 일곱 명의 표정과 목소리, 말과 움직임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식이다. 인원 자체가 영화의 규모를 결정짓기도 하는데 고민은 없었나. 윤가은_ 애초 그렇게까지 많은 인원을 등장시킬 생각은 없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주인공 한 명과 서브 인물 두 명으로 구도를 짜놓았다. 그러다 오디션 마지막 날 마음을 바꿨다. 최종 후보로 생각한 아이들이 일곱 명이었는데, 한자리에 다 모아놓고 보니 너무 좋은 거다. 촬영할 장소를 반나절쯤 같이 돌아다니면서 이야기 나눴다. 그때 나뿐만 아니라 촬영감독과 PD도 비슷하게 감지한 것 같다. ‘아이들이 다 같이 있으니 좋다!’ 세 명이 아닌 일곱 명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다닐 때 생기는 그 중구난방의 에너지,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엉키면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조합을 영화에 가져가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향이 잡히고 나니 오히려 주인공이 사라졌다. 영화는 결국 인물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 중 한 명이 영화에 들어가는 입구로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고 봤다.
윤가은 ⓒ이영진 이종필 감독은 <침팬지>를 “사적인 영화”라고 표현했다. <침팬지>는 촬영과 장면 리듬, 삼각관계의 배치 등 <쥴 앤 짐> 같은 누벨바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신작 <파반느>는 주인공 경록의 부모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즉 주인공의 탄생을 고전영화처럼 연출한다. <침팬지>를 영화광 시절에 대한 멜로라고 본다면, 이종필 감독에게 멜로는 곧 클래식을 의미하나 싶은데. 이종필_ 사적인 영화라고 말한 건 정말 일어났던, 실제로 겪은 일을 담아서다. 2000년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동물에 관한 책을 한 권 봤다. 다른 동물은 정보 위주였는데, 유독 침팬지만 ‘폴란드에서 온 침팬지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날부터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보는 게 취미가 됐다. 딱히 할 일도 없던 시절이라 틈만 나면 갔는데, 심지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도 혼자 침팬지를 보러 갈 정도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원숭이 사육사님한테 물어봤다. “선생님, 폴란드에 침팬지가 있을까요?” 그 이후 이야기는 영화와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는데, 책에서 이런저런 글을 봤다고 하니 예전에는 비공식적으로 수입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러더니 일반 관람객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공간에 홀로 머무는 나이 많은 침팬지가 있다며 보러 가겠냐고 묻더라. 내가 읽은 책에 등장하는 바로 그 침팬지일 수도 있고, 그때 폴란드에서 같이 온 침팬지일 수도 있다면서. 그렇게 어떤 이야기에 나오는 존재를 실제로 마주했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책을 다시 봤더니, 내가 읽은 이야기가 없는 거다. 혼란스러웠다. 없는 이야기를 있다고 내가 착각한 건가? 그렇다면 그날 봤던 침팬지는 뭐지? 하필 제대 후 내 안에서 뭔가가 꺾였다고 느끼던 무렵이었다. 만약 기억이 잘못된 거라면, 내 과거 중 일부가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에 이상해진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영화 속 고도처럼 동물원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몇 년 전에 어디서 침팬지를 봤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지, 죽었다면 언제 죽었는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존재는 없던 건지. 게시판 관리자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했겠다. 이종필_ 보통은 “단체는 몇 명부터 할인되나요?” 같은 질문이 올라오는 게시판인데, 다른 질문에 그러하듯 내 질문에도 사무적이고 친절한 답변이 달렸다. 문의하신 내용은 확인했다, 침팬지는 잘 있다, 항상 저희 동물원에 관심 기울여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그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나도 한동안 그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작년에 지인과 대화하다가 불쑥 떠올랐다. 나한테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 일러줬더니, 상대가 “영화로 찍으면 재밌겠다” 하더라. 재미야 있겠지만 어떻게 찍을 수 있겠나 싶어서 웃고 넘겼는데, 신기하게 며칠 안 지나서 <극장의 시간들>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어쩌다 오래전 기억이 호출됐을지 궁금했는데, 결국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다. 과거 고도와 현재 고도에 원슈타인과 김대명을 캐스팅했는데. 본래 인연이 있던 배우들인가. 이종필_ 김대명 배우는 친구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고도 역으로 생각했다. 원슈타인과는 따로 친분이 없는 사이였다. 캐스팅하고 싶어서 처음 연락했다. 두 사람을 붙여서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영화 후반부에 김대명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 ‘원슈타인과 같은 인물이구나’ 하고 곧장 이해가 되더라. 윤가은_ 감독님 캐스팅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 이종필_ 네이버 검색 덕분에 배우를 찾았거든. 대명 배우의 20대 시절을 연기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신인 배우로는 그 느낌이 잘 살지 않을 듯했다. 누구를 캐스팅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아우라가 있는 뮤지션이면 어떨까 싶더라. 네이버에 ‘김대명 닮은꼴 뮤지션’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원슈타인이 딱 나왔다. 어느 팬이 “우리 원슈는 김대명도 닮았고…” 같은 식으로 써놓은 글이 있었거든.
<극장의 시간들> 스틸, 순서대로 <침팬지>, <자연스럽게>, <영화의 시간> 캐스팅 제안에 원슈타인의 반응은 어땠나. 흔쾌히 수락하던가. 이종필_ 원슈타인은 적극적이었고 회사도 협조적이었는데, 연락이 닿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회사 대표인 자이언티에게 먼저 연락해서 담당자 연락처를 문의했다. 대화 자체는 수월한데 답장이 오기까지 하루이틀 텀이 생기는 식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외 공연을 소화하는 중이었더라. 원슈타인과 직접 연락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됐다. “괜찮으시면 카톡으로 대화해도 될까요?” 하고 먼저 연락이 왔다. 그리고 카카오톡을 들어가서 보는데, 나 그때 되게 감동했다. 원슈타인 아이디가 ‘할머니 나 지원이야’였거든. 순간 어떤 히스토리가 느껴졌다. 연락할 때마다 자신이 누군지 할머니가 바로 아실 수 있도록 일부러 저장해놓은 이름이구나. 윤가은_ 왠지 눈물 난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가족분들 오시지 않았나. 이종필_ 많이 오셨지. 할머니랑 어머니 다 오시고. 김대명 배우의 젊은 시절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데다, 삼총사로 나오는 이수경, 홍사빈 배우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더라. 이종필_ 현장에서 지켜보며 배우와 뮤지션은 다른 데가 있구나 싶었다. 시나리오에는 ‘눈물이 맺힌 채 바라본다’ 같은 식으로 써놓을 수는 있지만, 그걸 실제로 해내는 건 어렵다. 배우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주문일 수 있다. 그래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본인은 “해보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정말 해냈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았다. 음악 하는 분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데,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막상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오늘 완전히 죽여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진다는 거다. 원슈타인도 액션이 들어가면 딱 그걸 해내려고 하더라. 보통 배우들은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질문하거든. ‘왜 울어야 하지? 어떤 마음이지?’ 그런 접근방식과는 또 다른 결이었다. 윤가은_ 원슈타인, 이수경, 홍사빈 배우 실제 나이를 듣고 놀랐다. 세 분 다 20대 후반이라는데, 영화를 보면 정말 스무 살 같은 느낌이 난다. 이종필_ 이수경 배우는 예전부터 꼭 한 번 작업해보고 싶었다. 홍사빈 배우는 당시 군 복무 중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 본인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친구에 대해 예전부터 사빈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결국 휴가와 제대 시점을 확인해서 사빈 배우 일정에 맞춰 촬영했다. 윤가은, 장건재 감독도 줄곧 마음에 뒀던 배우들에게 프로포즈했다는 느낌이다. <영화의 시간>의 경우, 배우와 비배우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아마도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인연을 맺은 사람들 아닌가 싶은데. 장건재_ 정지혜 평론가는 동명의 영화인들도 있고, 본인이 작품에 서명을 남기는 의미도 있을 듯해 출연을 요청했다. 단순히 비전문 배우를 기용했다기보다는 프로젝트 취지에 맞게 ‘영화 정말 좋아하는 동료들’을 영화 안으로 불러들이고 싶었다. 다들 제안을 흔쾌히 받아줬고, 출근도 해야 할 텐데 밤늦게까지 고생했다. 영사 기사 역은 권해효 선배에게 부탁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한데, 한편으로는 이종필 감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면서 ‘우리가 조금 더 유기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뿐만 아니라, 아예 영화 안으로 영사 실장님을 모시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작품 취지를 보다 직접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다. 오히려 ‘비전문 배우’라는 의미에 가까운 이는 그분일 것이다. 연기한다기보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늘 해오던 일을 수행적으로 보여주시는 장면이 참 좋았다. 그 순간 영화에 또 다른 종류의 숭고함이 깃들면서 진짜 25주년을 기념하는 ‘트리뷰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이종필_ 영사 기사님은 카메라 앞에 서기가 부담스러우신지 나한테 “아니, 이런 건 권해효 씨가 하셔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시더라. (웃음) 무슨 역을 맡든 베테랑다운 느낌이 나지 않나. 경찰서장이었다가 도장 장인이었다가. 장건재_ 촬영장에서 권 선배의 연기 톤이 이전과 묘하게 다르다고 느꼈다. 뭐가 달라졌을까 의아했는데, 돌이켜보니 <얼굴>(연상호, 2025)을 찍은 직후였던 것 같다. (웃음) 영화에서 권 선배가 필름을 로딩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영사 기사님이 손 대역을 해주셨다. 권 선배도 잘하셨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래도 몸에 밴, 어떤 체화된 액션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장건재 ⓒ이영진 윤가은 감독은 영화 속 감독 역을 고아성 배우에게 맡겼다. 덕분에 흥미롭게도 고아성 배우는 세 감독의 세계를 모두 통과한 얼굴이 됐다. 각자 고아성의 어떤 점에 반했는지, 또 <자연스럽게> 속 고아성을 보며 새롭게 발견한 점은 뭐였는지 궁금하다. 이종필_ 우스갯소리로 ‘고아성 카르텔 영화’라고 말한다. (웃음) 윤가은_ 처음엔 인지하지도 못했다. 어떤 계산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사심으로 밀어부쳤다. 아성 배우의 오랜 팬이고, 예전에 영화제에서 함께 심사한 일을 계기로 조금 가까워졌다. 언젠가 꼭 같이 작업하기를 바랐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단편영화는 보통 영화제 초청되어야만 상영 기회를 얻지 않나. 그런데 <극장의 시간들>은 작업 방향이 확실한 데다, 씨네큐브라는 상영 공간도 이미 정해져 있기에 배우에게 조금 더 분명하고 가볍게 제안할 수 있었다. 부담을 과하게 주지 않는 선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본래 엔딩에서 감독은 얼굴 없이 목소리만 출연하는 걸 생각했는데, 현장 운용을 고민하다 보니 그 방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겠더라. 그러면 어떤 배우가 가능할까. 어린이들과 거의 즉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걸 함께 받아주고 버텨줄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배우가 고아성이다. 어린이 배우 출신이기도 하니 아이들과 어울리면 묘한 ‘케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다행히 아성 배우는 즉흥이라는 형식을 흥미롭게 생각해줬다. 솔직히 내가 기대서 간 부분이 많다. 말이 즉흥이지, 사실상 시나리오를 헐겁게 썼기에 배우가 스스로 만들어야 할 몫이 많았다. 나와 소통하며 인물을 준비한 다음에는 아이들을 이끌며 현장을 움직여 가야 했거든. 아성 배우가 그 모든 과정을 즐겨준 덕분에 나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러다 촬영 중반쯤 깨달았지. 두 감독님은 이미 고아성 배우와 작업했구나! 갑자기 압박감을 느꼈다. 나도 잘해야 하는데, 실망시키면 안 되는데 어쩌지. 그런데 그것도 잠시더라. 현장에 아이들이 일곱 명이나 있다 보니 부담도 금세 잊게 됐다. (웃음) 이종필 감독은 작업 시기가 <파반느>와 겹칠 듯한데, <자연스럽게>를 보며 미정을 떠올리지는 않았나. 그러고 보면 두 작품은 엔딩에도 공통점이 있다. 고아성 배우가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으로 끝나지 않나. 윤가은_ <파반느> 후반 작업할 당시, 영화 보셨던 거로 기억한다. 이종필_ 편집을 거의 마쳤을 때다. <파반느>를 워낙 오래 생각하고 작업했기에, 고아성 배우를 보면 계속 미정이 떠올랐다. 고아성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한동안 미정이라는 캐릭터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자연스럽게>를 보니 미정이 잘 살아 있는 듯해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황정은 작가가 인터뷰에서 그런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인물은 소설 속에서 끝을 잘 맺어주지 못해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그 말이 이런 뜻인가 싶더라. <파반느>랑 구분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아성 배우를 미정으로 바라보던 시간이 있다 보니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거다. 물론 이건 10퍼센트고 나머지 90퍼센트는 감탄이었다. <자연스럽게> 보는데 아성 배우가 진짜 감독 같더라. 역시 연기 잘하는구나 했지. 장건재_ <한국이 싫어서>(2024) 작업 후에 아성 배우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데, 내게 뭐 하고 지내는지 묻곤 한다. 나는 작은 작업들을 자주 하는 편이어서 그런 소식을 전하면, “저도 불러주세요”라고 하더라. 내 입장에서는 그 말을 반쯤은 흘려들은 게 사실이다. 산업 안에서 워낙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니까. 그런데 고아성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자기 취향과 방향이 굉장히 분명하지 않나. 이번에 윤가은 감독과 작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머셜한 작업에 한정하지 않고, 정말 다양한 방향으로 자신을 열어두는구나. 윤가은_ 시간이 갈수록 용감한 배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종필_ 함께 작업한 감독이라면 잘 알 거다. 현장에 고아성 같은 배우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윤가은_ 어린이들 일곱 명이 한꺼번에 다가와도 기운이 안 밀리고,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도 현장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 (웃음) 무엇보다 정말 새로운 작업을 좋아하는 배우구나 싶었다. 본인이 이미 잘하는 것을 택할 수도 있는데, 그게 나쁘거나 못난 것도 아닌데, 아성 배우는 굳이 새로운 쪽으로 간다. 그 용기가 엄청난 사람이고, 옆에서 지켜보며 나도 많이 배웠다. <자연스럽게>는 영화란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극장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도착한 이후의 시간 모두 영화의 일부로 보여주는 구조다. 한편으로는 감독이 현장에서 어떤 정신분열을 겪는지, 말로는 못다 할 고충도 엿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오히려 긍지가 느껴진다는 거다. “우리는 이렇게 애쓰고, 눈치 보고, 조율하고, 묻고 답하고, 이해하려고 분투하면서, 하지만 동시에 정말 깔깔대며 즐겁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윤가은_ 어린이들과 작업하다 보면 말 그대로 정신분열을 겪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참 신기하고 이상한 현장이다. 방전되다시피 하는 순간이 분명 있는데,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틈이 생긴다. 그 틈에서 나오는 웃기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작업의 묘미이기도 하다. 어린이들과의 작업은 어딘가 동아리 활동 같은 느낌이 있다. 나는 어린이들을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어린이로서의 역할이 있고, 직업인이라기보다는 어린이로서 이 작업에 참여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어른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있다. 어떤 순간에는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관계에 낯선 생기가 감돌고, 문득 어른들도 어린이로 돌아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때로는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싶다. 엄청나게 괴로워 하다가 얼마 후엔 아이들과 같이 놀고 있고. (웃음) 사실 영화엔 심각한 순간을 많이 넣지는 않았다. 고아성 배우가 카페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는 영화에 들어간 장면보다 훨씬 더 지친 느낌을 자아내는 컷도 있었다. 그걸 쓰면 현실적이긴 하겠지만, 갑자기 인물을 멀리 보내버리는 느낌이라서 제법 정제된 장면을 넣었다. 그런데 영화 보면서 궁금하더라. “너무너무 좋은데 한 번만 더 가자”라고 말하는 감독의 진짜 속내는 대체 뭔가. 정말 좋은데 욕심이 나는 건가, 아니면 사실은 별로였는데 에둘러 표현하는 건가. 장건재_ 일종의 습관 아닌가. 감독들 비슷할 것 같다. 윤가은_ 다행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이종필_ 우리가 받은 교육의 영향 아닐까. 영화의 신이 강림해서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처럼 내려줄 때가 있다는 믿음.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다는 마음에, 습관적으로 “한 번만 더”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윤가은_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100퍼센트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100퍼센트를 목표로 두는 순간, 끝을 낼 수가 없다. 테이크라는 게 그렇다. 완벽한 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또 현장에는 변수가 무수히 많다. 하늘도 시시각각 변하고, 갑자기 고양이가 그 앞을 지나갈 수도 있고, 설명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여러 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 그 모든 요소가 우주와 함께 움직이는 거다. 그래선지 롤링을 할 때는 늘 뭔가를 기다리게 된다. 종필 감독 말대로 신이 임하는 순간을 기대하기에 자꾸 그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배우들은 정말 듣기 싫다고 하던데. 이종필_ 그래서 나는 다르게 말한다. “너무너무 좋은데, 이번에는 배우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윤가은_ 그 말도 단골 멘트지. 지금까지의 디렉션은 다 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시라고. (웃음) 그러면 배우 입장에선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 개쯤 생기지 않겠나. 한편, 어떤 배우들은 일단 오케이 사인이 나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다음에 본인이 먼저 “한 번 더 가자”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안정감이 생기면 오히려 힘이 빠지면서 더 좋은 연기가 나오기도 한다더라. 그러고 보면 결국 사람의 작동 원리라는 게 비슷한 데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 장건재 감독은 신작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최근에 “너무 좋았는데 한 번만 더”라고 자주 말할 텐데. 장건재_ 5회차 촬영이었고 오늘 아침에 크랭크업했다. 안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면서 영화를 찍고 있는가. ‘좋다’라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그림이나 어떤 순간을 담아내고 싶다는 뜻인데, 영화라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그것을 완벽히 구현하기가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그런데도 감독들은 저마다 어떤 상을 품고 있으니 작업을 지속하는 것일 텐데, 과연 그 상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극장의 시간들>에는 영화의 이상만큼 현실의 실패가 꾸준히 등장한다. 예를 들면 <침팬지>에서는 AI 보이스로 “거의 모든 면에서 철저히 실패한 영화”라는 식의 혹평을 읊는다. 그러한 실패와 악담까지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뭐였나. 이종필_ 위트로 여기진 않았고, 오히려 현실의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한 멘트를 수집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 왓챠피디아에서 내 연출작을 평점 낮은 순으로 정렬해놓고 보면, 그와 같은 문장들이 쭉 나온다. (웃음) 작업 당시 더 독한 표현이 없을까 하며 찾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탈주>(2024) 리뷰가 눈에 들어왔다. “<탈주>는 모든 면에서 실패한 영화다”라는 첫 문장이 강렬했다. 결국, 그 문구를 활용해서 대사를 만들었다. 나는 상처를 받거나 하진 않는데, 리뷰 남기신 분이 언짢아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듣다 보니 감독에게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침팬지>를 보면 어떤 시간과 경험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멋대로 이야기로 자라나기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이야기가 극장에 영화를 불러들이는구나 싶기도 하고. 이종필_ 현실과 영화를 자주 겹쳐서 본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찍을 때였다. 어느 날 아역을 찍어야 해서 윤가은 감독의 ‘어린이 배우를 위한 촬영 수칙’을 정독한 적이 있다. 연출팀에게도 알려주고, 고아성 배우한테도 괜히 자랑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실천하기가 어렵더라. 윤가은_ 어렵지. 잘 안 돼서 만든 거다. (웃음) 이종필_ 이번에 <파반느>에서도 어린이집 촬영이 있었다. 현장에 딱 자리 잡으면서 ‘나도 윤가은 감독처럼 찍어보자’ 결심했지. 근데 시간이 좀 지나자 그냥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만 들더라. (웃음) 그렇게 최대한 속도를 내서 진행하려고 하는데, 그곳에 모인 아이들 중 한 명이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더라. <극장의 시간들> 완성하고 나서 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 첫 장면을 보는 순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어떤 텍스트와 현실의 경험이 쌓이고 겹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 같다. 현실과 영화의 모호한 경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정성일 선생님 책 중에 비슷한 제목 있지 않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 느낌에 가깝다. (웃음)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머무는 순간이 있다. 극장을 찾은 이들이 전부 잠드는 시퀀스가 인상적인데, 마치 극장이 현실로부터 사람들을 잠시 보호해주는 공간처럼 보이더라. 장건재_ 그 장면은 정지혜 평론가의 아이디어였다.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잠든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잠드는 바람에 끝까지 못 봤던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갔다가 또 자는 경우도 있고. (웃음) 나도 마찬가지고, 한동안 극장을 잠들기 좋은 공간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영화제에서 과욕을 부리던 시절엔 매일 다섯 편씩 예매했다가 그중 한두 편은 자고 나오는 일도 왕왕 있었다. 주인공이 우연히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잠깐 휴식하듯 잠드는 모습, 그 시간을 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극장에서 자면 재밌거든. 내가 정말 그 장면을 본 건지, 아니면 꿈에서 스쳐간 풍경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본인 영화를 수면의 영화로 칭하며, 자다가 깨다가 하면서 봐도 좋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감각과 닿아 있는 장면 같다. 이종필_ 나한테는 되게 따뜻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극장에서 잠드는 건 좋은 경험이기도 하고. 윤가은_ 다들 안 자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나. 그런데 그 영화 안에서는 곤히 자서 좋았던 것 같다. ‘그래, 잠이 오면 자야지. 그래도 좋지.’ 싶더라. 이종필_ 영화가 지루해서 자는 경우도 있겠지만, 때로는 영화가 어떤 무의식을 건드려서 나도 모르게 잠드는 순간도 있는 것 같다. 이미지나 사운드가 내 안의 어떤 것을 건드리는 순간, 그렇게 스르르 잠드는 경험 말이다. 별별 꿈도 꾸지 않나. 그러면 내 무의식이 극장 안에서 영화랑 같이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끼나. 감독들의 일상은 분명 고되고 치열하고, 때로는 지지부진한 순간도 많을 텐데,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로맨틱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 로맨틱함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각자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는지 듣고 싶다. 이종필_ <너와 나의 5분>(2025)을 만든 엄하늘 감독이 후배인데, 예전에 새벽 다섯 시쯤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그러더라. “형, 저는 영화를 사랑하는데 영화는 저를 안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 줄 아나. “야, 나 잔다.” (웃음) 글쎄, 예전에는 나도 영화에 굉장히 열렬했던 것 같다. 한때는 정말 그랬다. 지금은 열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뜨거워도 과거의 그 열렬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늘 부채감 혹은 미안함을 느낀다.
<극장의 시간들> 스틸, 순서대로 <침팬지>, <자연스럽게>, <영화의 시간> 자신에게 미안한 건가, 아니면 영화에? 이종필_ 영화에. 문화학교 서울을 들락날락하던 90년대를 떠올리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열렬했다. 거리가 얼마나 멀든, 지하철 공사를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갔다. 이제 그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그때를 잊지는 못하니까 부채감이 남아 있다. 왠지 영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거기까지 못 가고 있는 것 같은 마음. <침팬지>는 말하자면 과거의 사랑을 다시 쓰는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보다는 ‘사랑했다’에 가깝다. 영화에게 사랑받는 느낌? 그건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윤가은 감독은? 윤가은_ 사랑이라는 말이 조금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동안, 현장에서 모두 한곳을 향해 같이 움직이고 있을 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다들 농담처럼 “영화의 신”을 찾지 않나. 근데 아주 가끔은 그 신이 정말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와 손을 맞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그 외 대부분의 시간에는 여전히 영화와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다.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무언가를 꽉 붙잡고 있는 듯하다가도, 막상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나면 다시 바깥으로 확 튕겨나가는 것만 같다. 그러면 ‘영화의 성 안으로 한 번만 더 들어가 보고 싶다’라는 꿈이 생긴다. 아마도 나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변방에 있는 관객이자 지망생이겠구나 싶다. 특히 이번 작업하면서는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그게 싫지 않다. 여전히 자신을 영화인이라고 잘 느끼지 못하는데, 영화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아주 크다. 그 마음이 좋다. 프로페셔널과는 다른, 아마추어로서의 자율성과 가능성을 즐기고 싶다는 뜻인가. 이번 작업에서 특별히 그런 마음을 되새겼던 이유는 뭘까. 윤가은_ <자연스럽게>를 찍기 전에 세 번째 장편 <세계의 주인>(2025)을 마무리했다. 겉보기엔 장편을 세 편이나 찍은 감독이지만, 스스로 느끼기엔 아직도 영화인이 되지 못한 듯했다. 그러고 나서 단편을 찍으며 깨달았다. 뭔가를 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실패하는구나. 내가 다다를 수 없는 어떤 선이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그건 영화를 찍어야지만 비로소 내 눈에 보이는구나.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언제나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는 거다. 이상이 있지만 실현하지 못한 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고, 관객의 감상과는 별개로 내 기준에서는 실패작일 수밖에 없는 영화를 내놓게 된다.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는 어떻게 하는 거였지? 어떻게 해야 더 즐길 수 있고, 더 잘 만들 수 있지? 내가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걸까? 아마 이 마음은 아마추어에 가까울 거다. 얼마 전에 짐 자무쉬 감독의 오래전 인터뷰를 봤다. 자신은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아마추어란 뭔가를 사랑하는 상태의 인간을 가리킨다고 하더라. 말하다 보니 그렇다면 내 고민과 걱정을 결국 사랑과 연결되는지도 모르겠다. 직업인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고, 나는 끝내 지망생의 정체성을 지니겠구나 싶다. 사랑해본 사람만 아는 감각 같다. 영화의 희열도, 갈망도, 불안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백 번 듣는다 한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가은_ 운이 좋다는 생각은 정말 많이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으니까. 누구에게나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내게는 조금씩 찾아와 줬다. 그래서 매 작업이 너무나 소중하다. 기회를 헛되게 날리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도 늘 느낀다. 장건재_ 영화를 만드는 일이 감사한 일이라는 데 공감한다. 동시에 영화 만드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다른 노동이나 창작에 비해 영화가 더 숭고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다만 나 또한 영화를 업으로 삼기란 여전히 어렵다고 느낀다. ‘영화를 보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을 놓고 말하면, 영화를 보는 일이 훨씬 즐겁다. 나도 기본적으로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영화를 볼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한편, 어떤 영화를 볼 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고. 이종필_ 진정한 시네필이다. 장건재_ 결국 보는 일이 제일 즐겁지 않나. 만드는 노동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도 좋은 영화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과거 선배들을 보면 문학이나 연극과 대결하면서 영화를 만들던 시절이 있고, 또 시대와 충돌하고 저항하면서 영화를 만들던 시절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과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한다. 공명심에서 비롯한 생각은 아니고, 내가 무엇과 싸워야 할지 알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부분도 있고, 여러 현실적인 장벽도 있다. 그래도 가끔은 오기가 생긴다. 이 시대의 정전에 오를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건 재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영화와 여전히 그러한 긴장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종필 ⓒ이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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