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뷰 : 개봉작] 소원을 빈다는 것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2025.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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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빈다는 것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글 : 백승화 (<오목소녀> 감독)
귀가를 하다가 혹은 산책을 하다가 보름달이 뜬 것을 보면 소원을 빌곤 한다. 어제 빌었어도, 오늘 또 떠있으면 또 빈다. 태양광을 받아 전체가 밝아진 지구의 위성을 보며 두 손을 모은다고 해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을 담아 서너 가지 정도를 빠르게 빌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조금 놓일 때가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잠시 긍정하는 행위, 소원을 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물론 소원의 내용은 비밀이다. 영화 속 설희의 말마따나 “소원은 비밀이 핵심이니까.”
인상적인 제목의 영화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빌고 싶은 소원도 꿈도 없는 ‘설희’와 이번에야말로 꼭 취업에 성공해야 하는 ‘화정’, 두 친구가 어느 날 훌쩍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신나게 시작한 일탈은 잠을 자느라 일출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서서히 꼬여간다. 여행 중 각자의 울분이 폭발하여 크게 다투게 된 둘은 결국 각자만의 동해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우연히 만난 새로운 인연들로 인해 이야기는 전혀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때부터, 그러니까 ‘두 친구의 여행’이 ‘각자만의 두 여행’이 되면서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진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설희는 버스터미널에서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지안’을 우연히 만나 돕게 되고, 지안의 위태로운 결심을 막기 위해 친구가 되려 애쓴다. 또 다른 나 홀로 여행자가 된 화정 또한, 잃어버린 앵무새를 찾아다니는 영 기력 없고 퉁명스러운 여고생을 만나 예상치 못한 몸싸움에까지 얽히게 된다. 이 우연한 만남과 뒤따르는 해프닝들을 겪으며, 설희와 화정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서서히 열어나가는 과정을 영화는 조급하지 않고 때론 위트 있게 두루 살핀다.
오랜만에 만난 이광국 감독의 영화다. 그가 초기작인 <로맨스 조>(2012), <말로는 힘들어>(2012), <꿈보다 해몽>(2014) 등에서 일상과 판타지의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를 통해 특유의 의미와 재미를 선사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또한 여전히 독창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만듦새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해낼 수 있다. 엔딩 크레딧 속 감독의 이름이 여러 역할에 적혀있는 것을 보면 소규모로 이루어진 촬영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펜데믹 직후에 제작된 작품인 만큼 현장에서 겪었을 제약과 어려움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제한적 조건을 리스크로 여겨 피하거나 숨기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점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는데, 프레임 안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는 장면들이나 영화 속 인물들이 태연히 마스크를 쓰고 연기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인 에릭 로메르가 일찍이 스스로를 ‘아마추어’로 규정하며, 열 명 안팎의 소규모 스태프와 함께 촬영지에 녹아드는 방식의 영화를 지향했던 것처럼, 일정 부분 아마추어주의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이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의 제작 방식은, 우연히 거기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사와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극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흥미로워 보인다.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동해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서울에 사는 설희와 화정에게 동해는 떠오르는 해를 만끽할 수 있는 낭만적인 여행지지만,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안과 앵무새 여고생의 일상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 또한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감옥이나 따분함으로만 여겨진다는 점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갈등과 재회, 그리고 화해라는 아름다운 우정 서사의 공식대로만 마무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설희와 화정이 끝까지 서로의 마음에 충분히 가닿지 못하는 것을 보면, 늘 함께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각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문득 떠올리게도 한다. 가슴을 열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하고 원통할 때가 있듯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누군가의 삶 속에서 나를 엿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낯선 위로가 기적처럼 놀라운 일이라는걸, 영화는 동해를 배경으로 한 하루 동안의 예기치 않은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바다를 따라 목적 없이 내달리던 설희의 모습처럼, 우리 모두의 앞에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겠지만,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순간만큼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꿈꿔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그런 응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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