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뷰 : 개봉작]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우리의 얼굴, <우리의 이름> | 2025.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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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우리의 얼굴, <우리의 이름> ○ 글 : 손시내 (영화평론가)
청춘의 시간이란 왜 이다지도 씁쓸한 걸까. 그토록 찬란하다고, 가장 빛나는 때라고 누구든 입을 모아 예찬하는데, 정작 그 시기를 지나고 있거나 지나온 우리에게는 어둑하고 서글픈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아마 청춘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들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그러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찰나의 노을빛 같은 소중한 순간을 더욱 불러내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상록 감독의 〈우리의 이름〉은 그처럼 우리에게 남겨진 지난날의 슬픔 한구석을 건드린다. 동시에 스무 살을 앞둔 공업고등학교 청년들의 생생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렇게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청춘의 모습이 영화 곳곳을 채운다.
영화는 자기 모교에 취업 설명회를 하러 가는 영현(정순범)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요즘엔 대학 진학자 수가 늘어서 바로 취업하려는 학생들이 적다지만, 그래도 영현이 근무하는 한양전자에서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하는 현장으로 향하려는 학생들을 기다린다. 그런 학생들에게 모교 출신 선배는 아주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어쩌면 “선배님은 어떻게 준비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름〉은 그 질문에 대한 아주 솔직한 답변이다. 물론 영현이 그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그대로 들려주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영현은 전학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지역의 공고에 다니게 된 소년은 어리숙한 얼굴로 혼자 걷는다. 다행히도 함께 기숙사를 쓰게 된 아이들은 조금 거칠지만 착하고, 다정하진 않아도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다. 그중에는 영현과 이름이 같은 친구도 있다. 둘 다 김영현. 반도, 기숙사도 같은 이들은 곧 영현 B와 영현 A로 불리게 된다. 전학 온 영현이 영현 B, 학교에 먼저 다니고 있던 영현이 영현 A(민우석). 함께 고3 시절을 맞이하게 된 이들은 점차 가까워진다. 함께 기숙사를 쓰는 종수(이상하)와 주왕(김태현)까지, 특별한 사건 없이도 함께 장난치고 목욕탕에 가는 일상 속에서 이들은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네 사람이 따로 또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를 그저 무탈한 일상이라고 말하기엔 좀 망설여진다. 이들은 열아홉이고, 뭐라도 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공고생들이며,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래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이란 문턱을 넘기 위해 학생들은 각자에게 필요한 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를 쓰며, 자기가 갈 수 있을 만한 회사가 어딘지 가늠하는 시간을 보낸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장인을 이르는 ‘마이스터’를 학교 이름에 붙인 지 오래되었지만, 사실상 학교는 학생들을 장인으로 키워내는 것보다 취업률을 올리는 데 더 열심이다. ‘철강 로봇 융합’이라는 거창한 표현은 크고 작은 꿈과 소망들을 끝내 단 하나도 담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런 상황 속에 영현들이 있다. 인문계에 다니다 전학을 온 영현 B는 가고 싶은 회사를 찾지 못하고, 영현 A는 대기업 한양전자만을 목표로 하지만 정작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자기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종수와 주왕은 “집에서 가깝고 일도 별로 없어 보이는” 회사에 지원한다. 납땜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실습생이 되어 회사 작업복을 입으며 이들의 고3 시절은 천천히, 하지만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 길로 흘러간다. 영현들의 이름이 같은 것은 영화에 기묘한 공기를 불어 넣는다. A와 B로 나뉘어 불리는 이들의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익명성을 생각하게 한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과 실습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저마다 A 혹은 B가 되어 비슷한 미래를 준비하고 비슷한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영현 A와 영현 B가 서로를 “영현아!” 하고 부를 때, 뭉뚱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익명의 덩어리에서 생생한 얼굴들이 튀어나와 우리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두 사람의 과거나 구체적인 사연이 또렷하게 표현되지 않더라도, 현재를 살아내는 그 얼굴들이 또렷한 것은 변치 않는다. 꿈을 접었다고 이야기하거나, 꿈이 없다고 말하거나, 뭘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는 그 얼굴들. 웃고, 화내고, 서운해하고, 미안해하는 그 얼굴들은 현재의 파도에 흔들리며 말로 표현되기 어려운 불안과 그림자, 그리고 우정의 시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영현 B의 과거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무슨 일로 전학을 오게 됐는지,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어떤 일을 겪었는지, 꿈이었다는 미술은 왜 그만두었는지,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인 건지 모르는 채로, 관객은 다만 그의 과거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하며 눈앞의 고3 시절을 목격하게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사연을 다 알지 못하는 영현 A가 꿈을 포기한 것이 아깝다며 마지막으로 자기 모습을 그려달라고 말하는 대목에는 어딘지 모를 뭉클함이 있다. 자격증 따는 것을 도와줄 테니 대신 자기소개서 쓰는 걸 도와달라고 말했던 그가 친구의 꿈을 조금이라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무뚝뚝하게 내비칠 때마다, 이들은 어쩌면 서로를 지켜서 우리를 지키고, 그렇게 해서 자기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혼자는 너무나 연약해서 세상의 풍파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쉽게 휩쓸리고 말지만, 때로 서로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는 그 풍랑 속에서 작은 버팀목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세상 한 가운데에 있고, 그 세상이란 곳은 그다지 자비롭지 못하다. 인원이 정해진 채용 공고는 결국 학생들을 경쟁하게 하고, 실습생으로 나간 작업장에서는 아무도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줄곧 지원할 회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던 영현 B가 한양전자에 지원할 뜻을 내비치자 영현 A는 당황한다. 작업복을 입은 채 실습생으로 출근을 시작한 종수와 주왕은 크고 위험한 기계들 앞에서 너무나 작아 보인다. 1년을 함께 보낸 네 친구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마주하며 힘겹게 연말로 향한다. 무엇을 하고 싶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토록 흔들리고도 이들은 아직 그것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모습이 쓰라리면서도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은 건,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서 소리를 지르거나, 눈길을 보내거나, 가만히 친구의 곁에 서는 그 작은 몸짓들 때문일 것이다.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는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등 여러 차례 극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그 목록에 〈우리의 이름〉을 더해보며, 특수한 상황과 사건 그리고 보편적인 청춘의 시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고 곱씹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지난날, 어쩌면 다 지나간 건 아닌 과거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 때문이다. 그때 너와 나란히 서서 노을을 바라보던 학교 옥상, 그때의 우리와 그때의 마음을 다시금 들여다보려는 무심하고도 다정한 시선이 영화의 엔딩을 채운다. 그토록 구체적이고 또 그토록 보편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노을처럼 잔잔하고도 끈질기게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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