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봄, 마을의 젊은 여자들이 한꺼번에 끌려가 며칠 후 모두 사살되었다. 그때 단 한 사람의 소녀가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유일한 생존자이며 목격자인 그녀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평생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군가 물으면 대답 대신 발작을 일으켰다.
그 해 이후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는 죽음의 섬이었다.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이 공산 빨치산 소탕이라는 명목으로 섬 주민 3만여 명을 학살하고 집을 불질렀다.
당시 피해자의 상당 부분은 여성들이었지만 그들이 입은 피해는 오래 알려지지 못했다. 한 소녀는 면전에서 할머니가 칼에 찔려 죽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전신에 7군데나 자상을 입었다. 또 다른 소녀는 젊은 임산부의 옷을 벗기고 그 부푼 배를 창칼로 찔러 죽이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많은 소녀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치욕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지금까지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들이 시련을 견디어 내는 동안 어언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 피해자들 대다수는 세상을 떠났고, 극소수만이 생존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헌신적인 제주 4·3 연구자의 길을 따라가며, 어둠 속에 봉인되어 온 제주 여성들의 경험을 비로소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자 한다. 이것은 그들이 직면했던 엄혹한 시간으로 가는 여정이자 침묵에 잠긴 그들의 목소리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초혼의 행위이다. 또한 그 오랜 고통을 참고 이겨내 온 불굴의 정신들에 대해 제작진들이 바치는 경의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연출의도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이다. 그러나 바로 그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는 전면화되지 못한다. 4·3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동일했다.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만들어진 이후, 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되어왔으나 여성들이 겪은 4·3을 조명하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4·3 당시 자행된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은 어떤 의미에서는 남성들보다 더 깊은 고통과 상처로 남았다. 무차별 학살되기도 했지만 남편 대신 대살되기도 했고, 부모와 남편과 자식의 죽음을 목도하고 고문과 성폭행, 강제결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제주 여성은 당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었으나 대량학살의 비극을 거치면서 또한 그들은 동시에 가장 강인한 집단으로 자리잡았다.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대거 사라진 폐허 속에서 생계를 위한 노동과 재건의 책임을 져야 했다. 제주 역사의 한 축은 여성들이 일구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역사를 주목하고 복원하는 것은 개인사를 넘어 가족사와 마을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며 4·3의 역사 자체를 온전하게 복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