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배급아카데미 5기] 지극히 사적인 고민으로부터 | 2024.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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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인디그라운드 배급아카데미 5기] 지극히 사적인 고민으로부터 - 인디그라운드 배급아카데미 5기 수료생 전수빈 - <지구 종말 vs 사랑> 등 9편의 독립 단편,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스토리 IP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작가로 근무 중이며, 언제나 영화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그러던 중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배급아카데미 5기’ 수강생 모집 공고를 보았습니다. 지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전에는 영화 배급 및 마케팅에 관해 그저 막연한 관심만 가지고 있었고, 설령 운 좋게 수강생으로 뽑힌다 해도 이미 영화계에 애매하게 발을 걸친(?) 제가 누군가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릇 기회란 지하철 2호선의 불시에 난 빈 좌석처럼 먼저 엉덩이를 들이밀어 차지하는 자의 것이지 않겠습니까? 이 기회를 모른 척한다면 적어도 세 달 뒤에도 ‘아, 떨어진대도 한번 지원은 해 볼걸’ 하고 후회할 제 모습이 너무나 선명했기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지원서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10주 동안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 과정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나자,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어디 갔었나 싶은 학구열이 새삼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강사님께 수업 내용 중 궁금했던 걸 질문할 때면 ‘이렇게나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나’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기도 했지요. 모든 수업과 강사님들을 일일이 거론하긴 어렵지만, 배급아카데미 과정을 통틀어 가장 크게, 또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엔 의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되고,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 또한 카메라 뒤편에 있는 감독의 ‘의도’를 처음으로 인식한 순간이었습니다. ‘아, 이 장면은 감독이 이런 의도를 가지고 연출했겠구나.’ 그런 생각을 최초로 하게 된 순간부터 영화를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지요. 배급, 부가시장, 홍보마케팅, 기획서, 임팩트 프로듀싱, 커뮤니티 시네마 등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모든 분야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한 작품을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최적의 전략부터, 넓게는 어떻게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불러올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까지 들여다보자, 관객으로서 무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지나쳤던 모든 요소에 많은 사람들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때로는 ‘이게 최선이었을까?’ 싶었던 마케팅에도 그 이면에는 나름의 고충과 한계가 있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급·홍보마케팅 또한 하나의 창작이나 다름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업 외에도 배급아카데미 과정에 기대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좋은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쑥스러움이 많은 제 성격상 많은 동기 분들과 두루 친해지진 못해 아쉬웠지만, 10강 배급·홍보마케팅 기획서 발표를 준비하며 조원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덕분에 언제 해 봤는지도 까마득한 조별 과제를 수행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기획서 발표를 마쳤던 것까지 모두 언젠가 돌아봤을 때 마음 한편에서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조가 되어 주셨던 경윤 님, 채린 님께 감사드립니다.) 10주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짧았던가요? 어느덧 수료장을 받아 들었을 때 문득 ‘벌써?’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기엔 다소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 배급아카데미의 수업 구성이 훌륭했던 것과 별개로 ‘나는 그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는 배급아카데미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유독 영화의 톤 앤 매너나 포스터 속 카피 문구를 유심히 분석하고, 작품 뒤편에 서 있을 마케팅 담당자의 고민을 상상해 보고, 매일 KOBIS 홈페이지에 접속해 관객 수를 확인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순수한 관객으로서 영화를 즐기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영화 내적인 것을 고민하는 것과 동시에 외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은 생겼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현재 배급·홍보마케팅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지만, 배급아카데미를 통해 영화인으로서 소화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보다 넓힐 수 있었습니다. ‘나 이제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조금은 덜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기분이랄까요. 앞으로도 이어질 배급아카데미 지원을 희망하는 분이 계시다면, 과거의 저처럼 망설이진 마시길 바랍니다. 어차피 여러분이 수강생으로 선정될 확률은 10분의 1도 안 될 거예요. 그만큼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지원자가 꽤 많이 몰리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되신다면, 그건 여러분이 배급아카데미에 참여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뜻이겠죠. 미리 건투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