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뺏벌’.
그곳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인순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뺏벌의 유령들을 데려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순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Review 함부로 대명사가 된 이름을 더 꼽아 부르고 싶은, 그래야만 하는 일 년을 샜다. 무력에 의해 밀려나는 혼령이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랐다. 우리는 희생의 이름과 당시의 날을 거듭 외우는 일을 마다해선 안 된다.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예고편에 쓰인 이 말은 나를 사뭇 진동하게 했다. 저승사자가 삼 회를 호령하면, 목숨이 멎는 일 역시 석 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명제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도 해당한다. 인순은 뺏벌에서 살아가며, 이름을 잃은 귀신들의 곁을 차지한다. 그들은 ‘우리’였던 기지촌 여성들이다. 인순은 기꺼이 목을 긋는 복수에 동참했고, 허기를 달랠 수 있게 먹였다. 영화엔 인순과 혼을 ‘이야기’로 모으겠다는 욕구를 지닌 인물이 여럿 나온다. 열띤 취재를 하던 작가와 명부가 없으니 사연을 넣어 데려가야 한다는 저승사자의 무리. 이 사회는 슬픔을 이익으로 교환하려 든다. 애도마저 호오에 맞춰 간편히 이송되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명확히 안다. 정녕 이름은 매도될 수 없음을. 이를 인순도 안다. 인순은, 그들의 서사가 되어주지 않는다. 불면을 혼과 거뜬히 나며, 복수와 친애로 서로의 서사를 돕는다. 그렇게 함께 이름이 되어 ‘이야기’로 완성될 이 영화는 무척 숭고하다.
*관객기자단[인디즈]_김해수
연출의도
영화는 기지촌 여성이었던 박인순의 자전적 역사쓰기에 관한 픽션이며 존재했으나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자 소멸에 저항하기 위한 복수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