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질 것 같던 별이 해가 뜨며 사라지고, 등 굽은 의선이 유모차에 의지해 마당을 느린 걸음으로 돈다. 순분은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인다. 깨를 심고,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는 순분의 손과 발에 흙이 가득 묻어있다. 금연은 모를 심고 있는 상희의 새참을 준비해 논으로 향한다. 금연과 상희는 작은 수풀이 만들어낸 그늘에 앉아 중참을 먹으며 까르르 이야기를 나눈다. 회관에서는 여럿이 둘러 앉아 밥을 먹고, 화투를 치고, 새근새근 낮잠을 청한다.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소성리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간다.
‘삐이~ 삐이~’ 사이렌이 울리고, “주민 여러분. 사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세요.” 순분이 마이크를 잡고 외친다. 2017년 4월 26일 소성리는 경찰의 군홧발과 미군의 비웃음으로 사드가 배치되면서 평화로웠던 일상이 무너졌다. 전쟁을 막겠다고 들어온 사드는 소성리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렸고, 사이렌 소리에 맞춰 주민들은 사납게 움직인다.
연출의도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호사스럽지는 않지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되면서 마을이 전쟁터가 되었다.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민들은 마음 속 깊이 싸매고 있던 감각의 봉인이 해제됐다. 전쟁을 경험하고 이후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빨갱이 프레임 속에서 평생을 숨죽인 채 살았던 소성리 주민들, 그들에게 ‘전쟁’과 ‘안보’는 ‘공포’의 다른 이름이다. ‘사드’는 소성리 주민들에게는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 봉인 돼 있던 전쟁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문이었다. 그 문은 전쟁 이후 가난과 불안을 재 감각하게 하는 무서운 통증의 시작이다. 한동안 꾸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악몽을 다시 꾸게 만드는 고통이다.
영화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 새겨진 개인의 삶과 전쟁의 상흔을 따라간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침묵하며 평생을 살아왔던 이들의 마음 속 풍경을 들여다보고, 평화를 바라는 그들의 의지를 담담히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