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화려한 휴양도시 베트남 다낭에서 20분이면 닿는 마을,
매년 음력 2월이면 마을 곳곳에 향이 피워진다.
1968년, 한날 한시에 죽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살아남은 이들은 위령비를 세우고 50여 년간 제사를 지내왔다.
“내가 똑똑히 봤어. 한국군이었어”
그날의 사건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탄 아주머니,
그날의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 껌 아저씨,
그날 이후 전쟁의 흔적으로 두 눈을 잃은 럽 아저씨는
지금껏 숨겨온 기억을 꺼낸다.
연출의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할아버지로부터 ‘월남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만난 베트남과 할아버지의 ‘월남’은 같은 곳이었지만, 할아버지의 기억과 나의 것은 확연히 달랐다. 고엽제로 인한 암투병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인 탄 아주머니가 한국에 방문했다. 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어깨를 잡으며 파르르 떨 때, 나는 사람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가 폭력에도 무너지지 않고 다른 이의 손을 꼭 맞잡고 살아가는 베트남 여성 탄, 학살 이후 지뢰로 눈이 먼 럽, 들리지 않지만 학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마주한 껌. 이들의 삶에서 공적 기억과는 또 다른 사적 기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그들의 기억의 전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