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일도 사랑도 모두 떠나보낸 누군가가 있습니다. 종일 그는 텅 빈 눈동자로 천장만 응시하네요. 그러다 무작정 집 밖으로 나섭니다. 단지 길거리를 배회하는 일만이 그의 최선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보이는 것들은 있네요. 나오자마자 피부에 스미는 하얀 볕. 아침이니 아침을 차리는 소리들. 풍기는 봄 내음과 어제보다 푸르른 플라타너스. 내내 동행해 온 바람. 다만 아직 알다 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부재한 와중에도 충만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인 걸까요?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질문에도 영화는 응답을 준비합니다. <지난 여름>은 섭리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눈눈눈>은 상상하는 자아만이 정립될 수 있다고, <땅거미>는 옅은 빛조차 따라갈 가치가 있다고 답하는 듯합니다. <소년유랑>은 위태로운 미신으로도 생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고요. <순이>는 타인의 평가 대신 스스로 외우는 주문에서 드높은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늙지 않았으면, 죽는 날까지 안 본 영화가 수두룩했으면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삶이 단 한 번이라면, 삶의 대안만큼은 무작정 영원했으면 싶거든요. 정처 없이 떠돌던 그가 영화관에 들어가 영영 나오지 않는 상상을 합니다. 부디 그에게 기쁜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기자단[인디즈]_문충원
